신학 서적은 목회자나 신학생들만 읽는 것일까. 종교개혁 500주년 이후 평신도들 사이에서도 신학 책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져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먼저 퍼져나가고 있는 공간은 주로 SNS에서다. 최근 페이스북 같은 SNS에서는 ‘벽돌책’이라고 불리는 두꺼운 신학 책을 읽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올리거나 독서모임을 만들어서 같이 책을 읽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신학을 전문 학자들의 전유물로만 여기지 않고 일반 교인들 사이에서도 교양으로 읽는 분위기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청어람ARMC(대표 양희송)는 이처럼 신학 책 읽는 평신도들을 위해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백범로 르호봇신촌비즈니스센터에서 ‘교양으로서의 신학 읽기’를 주제로 북토크를 열었다. 현장을 찾아 신학서적 읽기에 빠져든 평신도 패널 3인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처럼 신학 읽기에 도전하고픈 독자들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팁을 정리해봤다.
‘아마추어리즘’이 공통점
교양으로서의 신학이라는 주제에 맞게 사회자·패널로 참석한 이들 중 신학자나 목회자는 없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아마추어리즘’이다. 신학을 생업으로 삼은 학자들은 아니지만 신학 책 읽기를 즐겨하면서 삶의 일부가 된 것이다. 이들이 신학 독서에 빠져들게 된 배경을 들으면서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실감났다.
‘열정적 독서가’로 소개된 정한욱 전북 고창 우리안과 원장은 안과의사로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면 책을 읽는다. 업무를 마치고 잠시 눈을 붙인 다음 오후 8∼9시에 일어나 새벽 1∼2시까지 책을 읽고 들었던 생각을 페이스북에 글로 올린다. 그의 페이스북에 가보면 다양한 색으로 밑줄 그어진 책 사진과 함께 수준 높은 감상평들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현만씨는 출판사 에클레시아북스에서 영국 신학자 톰 라이트의 책을 전문적으로 번역·출간하고 있다. 2010년 ‘톰 라이트 예배를 말하다’를 번역·출간한 이후로 그가 이 출판사를 통해 소개한 톰 라이트 관련 서적만 10권이 넘는다. 전문적인 학자가 아니지만 신학자들도 읽기 어려운 톰 라이트의 책을 내기 시작하면서 그의 별명은 ‘톰 라이트 덕후’가 됐다. 흥미롭게도 그의 본업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도서출판100의 김지호 대표는 지난해 1인 출판사를 시작했다. 얇지만 알찬 내용이 담긴 ‘신학 공부를 위해 필요한 101가지 철학 개념’ ‘개혁신학 용어 사전’ 등 5권의 책을 내면서 최근 기독출판계와 독자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이 신학 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양했다.
정 원장은 86학번이다. 군부 정권에 맞서 데모가 한창 벌어지던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 그는 당시 세상을 바꾸겠다며 최루탄 냄새 맡아가면서 시위 하던 학생들이 분명한 지향과 입장을 갖고 있는 것을 인상 깊게 봤다. 하지만 정작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다닌 교회는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하나님께 찬양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기독교도 현실에 대한 인식과 구체적인 담론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이 바로 미국 IVP편집장을 지낸 제임스 사이어의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이었다. 이후 리처드 니버의 ‘그리스도와 문화’ 같은 고전을 연달아 읽으며 기독교가 이 세계를 변혁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씨 같은 경우 아버지의 영향을 통해 신학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설교집이나 신학강의를 테이프로 자주 들으면서 자연스레 신학에 호기심을 갖게 됐고, 의과대학에 다니던 시절, 도서관에서 신학 책을 즐겨 읽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20대 시절 신앙에 대한 진지한 고민 때문에 목회자나 신학자들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직접 답을 찾기 위해 신학 책을 뒤지기 시작했고, 어느새 1인 출판사 대표 자리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독서는 신앙생활”
아무리 신학 서적 읽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일반인 입장에서 어려운 신학적 내용을 만나면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패널들은 어떻게 때때로 찾아오는 독서의 장벽을 극복했을까.
최씨는 먼저 “독서는 신앙생활”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다. 가르치기 전에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공부를 하고, 교인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기도한다. 그는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교인들에게 신앙과 신학에 대한 질문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과정이 신앙생활의 일부라고 했다. 남이 설명해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성경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가려는 지적 열정이 가장 큰 동력이 됐다.
정 원장은 인간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변화에 노출시키지 않으면 자기 생각의 순환에 갇히게 된다고 말했다. 속칭 ‘꼰대’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머리를 망치로 내려치지 않는 책은 읽을 필요가 없다”며 “기존 입장을 지키는 것을 공부의 전부라고 오해하면 안 된다. 공부란 나에 대한 타자의 충격적인 개입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패널 각각의 독서 노하우를 전달하는 시간도 있었다. 톰 라이트 마니아인 최씨는 저자 중심 독서를 고수한다. 한 저자가 마음에 들면 그 사람의 책을 죄다 읽는 것이다. 의사가 되기 전 심리학에 관심이 있어 유명한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의 책을 모두 읽었다. 한 작가를 섭렵하다보니 나중에는 그의 책에 어떤 표현이 나올지까지 다 예상됐다.
정 원장은 주제별 읽기를 선호한다. 특정 주제에 관심이 생기면 먼저 개괄할 수 있는 교과서 성격의 책을 정한다. 그리고 관련 책들을 함께 읽으며 내용을 정리해간다. 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입체적인 독서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책을 읽은 다음 정리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 원장은 책을 읽고는 A4용지 1∼2매 정도로 내용을 써서 페이스북에 꾸준히 올린다.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성의 없이 쓸 순 없다. 피드백을 받으면서 고민을 점차 심화시키기도 한다.
김 대표 같은 경우는 ‘가장 성경적이다’라고 말하는 책을 가급적 피한다고 했다. 이미 그 책은 특정 주제에 대해 성경적인 답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전제하고 있어 역설적으로 성경을 안 봐도 된다는 인식을 갖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성경의 자리를 대체하기보다는 질문을 품게 만들고 성경으로 다시 돌아가 해답을 고민하게 만드는 게 책의 역할이라고 봤다.
다양한 신학 책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신학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지적으로 교만해지거나 목회자와 갈등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으냐는 한 참석자의 질문이 나왔다. 그는 “신학 책을 보면서 오히려 신앙이 더 메말라가는 것 같다”며 “다양한 신학적 입장을 보면서 오히려 혼란스러워져서 독서와 담을 쌓게 됐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최씨는 “신학 책이 학문적이긴 하지만 은혜를 주는 부분이 있다”며 “책모임을 함께 한 분들 중에는 혼자서 부흥회를 했다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여러 주석책을 보면서 하나님이 저를 위해 많은 성경해설가들을 주셨다고 생각한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을 입체적으로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고 조언했다. 김 대표는 “성도들이 신학을 공부할 때 목사들도 같이 긴장해서 공부하는 선순환이 생긴다”며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만 접근하지 말고 각 신학자들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살피면서 읽으면 나와 다른 입장에서도 도움을 얻을 내용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글·사진=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신학 서적 읽는 평신도들 “독서가 신앙생활이죠”
입력 2018-03-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