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있는데… ” 애타는 부모들
유일한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스핀라자 정부 허가받았지만 1년 약값만 7억∼8억원
건보 적용되면 해결… 희귀질환 치료제 건보 등재율 낮고 오래 걸려
글로벌 임상시험 대상 된 ‘민지의 기적’
머리도 못 가눴는데 투약 후 혼자 앉아… 진단 초기에 치료제 사용해야 효과 극대화
“하루라도 빨리 치료받게 도와달라”… 부모들 국회 보건복지위원 22명에게 손편지
신경근육계 희귀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SMA)’ 환자와 가족들이 지난달 말 국회 보건복지위원 22명에게 일일이 손편지를 써서 보냈다. 한 환자는 희귀병의 고충을 이렇게 썼다.
“SMA가 있으면 저처럼 휠체어에 앉아 무언가를 할 수도 있지만 더 심한 경우엔 호흡기를 하고 24시간 보냅니다. 저는 두세 살 무렵 딱 한 번 잡고 서본 것 외에 한 번도 서거나 걸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릴 때는 혼자 앉을 수도 있었고 손을 들고 발표할 수 있었고 엎드려서 책을 읽을 수 있었어요. 어느 순간 혼자 앉기가 힘들어졌고 무거운 물컵을 들 수 없어 플라스틱 컵으로 바꾸게 됐고 올해는 말하는 것이 버거워졌습니다.”
다른 환아 보호자는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스핀라자를 쓸 수 있다면 올해 일곱 살인 우리 딸은 말을 할지 모릅니다. 동갑내기 친구는 호흡기를 뗄지도 모릅니다. 아홉 살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SMA는 진행성 질환이라 아이들의 상태는 매일매일 안 좋아집니다. 우리 아이들이 하루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가족들이 약값 걱정 없이 스핀라자를 쓸 수 있게 도와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눈앞에 치료제를 두고도…
척수성 근위축증은 온몸의 근육이 점차 약해져 신체에 심각한 장애가 나타나고 혼자서는 간단한 일상생활도 하기 힘들어지는 병이다. 근육을 움직이는 SMN이란 단백질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해 발병한다.
발병 연령과 증상에 따라 1∼4형으로 나뉘는데 나이가 어릴수록 상태가 심각하다. 인지 기능은 정상이지만 목 얼굴 혀 척추 팔 다리 등의 근육이 동시에 약해져 허리가 S자로 휘고 숨을 쉬거나 음식을 삼키기조차 어려워진다. 1형의 경우 대개 만 2세가 되기 전에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다. 환자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80여명을 포함해 국내에 150여명의 환자 및 가족이 있는 걸로 파악되고 있다.
지금까지 이 병은 근육과 관절의 변형이나 기능 장애를 줄이기 위한 물리·재활 치료 외에 다른 치료 방법이 없었다. 하루빨리 근본 치료제가 개발돼 투약할 수 있기만을 간절히 바라야 하는 처지였다.
지난해 말 환자와 가족들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는 듯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개발된 유일한 치료제(주사약) 스핀라자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 마침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스핀라자는 병의 원인인 SMN 단백질의 양을 보충해 운동 기능을 개선하고 생존율을 배 이상 높이는 걸로 임상시험 결과 입증됐다. 병의 진행을 늦춰 환자 상태를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도와주는 것으로 알려져 서둘러 사용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런데 ‘억’ 소리가 나는 약값 앞에 환자와 가족들은 다시 좌절해야 했다. 한국보다 2년 앞서 환자들에게 적용된 미국의 경우 한 번 주사에 12만5000달러(약 1억3500만원)나 들기 때문이다. 이 치료제는 첫해에 6차례, 이후 매년 4차례씩 주사로 맞아야 한다. 결국 첫해에 7억∼8억원, 이듬해부턴 매년 4억원 넘는 치료비를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일본에선 1회 주사에 9000만원 정도 들지만 정부의 건강보험 지원으로 환자들이 거의 무상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허가 이후 아직 건강보험 등재와 급여 여부가 결정되지 않아 한시가 급한 환자들의 치료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환자와 가족들이 하루빨리 치료제를 쓸 수 있도록 제약사와 정부의 보험 약가 결정을 촉구하고 국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딸(14)이 환자인 한국척수성근위축증환우회 문종민(46) 회장은 5일 “고가인 희귀질환용 의약품의 경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험 약가 심사에 걸리는 시간은 업무 일수로만 240일이나 된다. 그것도 순조롭게 약가 협상이 진행될 때에 한해서다. 제약사와 약가 협상이 순탄치 못하면 더 걸릴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아이들, 언제까지 버텨줄지
또래와 한창 뛰어놀 나이인 여섯 살 가은이는 하루 종일 방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생후 6개월쯤 척수성 근위축증을 진단받은 뒤 목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것은 물론 앉거나 걷는 것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물리·재활 치료를 받으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지만 점점 굳어져가는 몸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척추측만증도 생겨 등이 S자로 굽었다.
대신 아파해 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라는 엄마 권미영(38)씨는 “오래 기다리던 치료제가 있는데, 주사 한 번에 1억원이라니 우리로선 ‘그림의 떡’이다. 한 번도 아니고 평생 맞아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일곱 살 강현이는 호흡 근육이 약해 기도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로 숨을 쉰다. 입으로는 음식을 먹을 수 없어 배꼽에 가느다란 관을 꽂아 영양분을 섭취한다. 가래가 자주 끼는 날에는 엄마가 5∼10분마다 빼 주지 않으면 숨이 막혀 위험 상황에 처한다. 그래서 누군가 곁에 24시간 붙어 있어야 한다.
엄마 정유경(40)씨는 강현이를 낳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정씨는 “1형 아이들은 오늘내일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도 강현이 친구 2명이 하늘나라로 갔다”면서 “아이들이 더 나빠지기 전에 치료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일본 등 스핀라자를 거의 무상으로 지원받는 나라로 이민을 고려하는 환자와 가족들도 있다고 한다.
대다수 환자가 고가의 치료제를 엄두도 못 내는 상황에서 민지(10)는 남들보다 앞서, 그것도 무상으로 접하는 행운을 얻었다. 2014년 11월부터 진행 중인 스핀라자의 글로벌 임상시험에 국내 참여자 3명 가운데 1명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민지도 여섯 살이 될 때까진 머리도 가누지 못했다. 스핀라자로 치료받고 난 뒤로는 혼자 앉고 엎드려 두 팔과 다리로 길 수 있게 됐다. 또래 환아들이 모두 겪는 척추측만증도 피해갔다. 주치의인 채종희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임상시험 참여자 중 민지의 상태가 가장 많이 좋아졌다. 다른 2명도 개선되고 있다”고 말했다.
민지 엄마 심순영(38)씨는 “당초 다른 아이가 임상시험 기준에 맞지 않아 탈락하는 바람에 딸이 행운을 얻었는데, 상태가 좋아져 감사하고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하다”면서 “빨리 치료제에 보험이 적용돼 다른 환자들도 혜택을 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희귀난치성신경근육병 재활연구소 최원아 교수는 “근육이 다 망가진 뒤에는 치료제의 효과가 떨어진다. 진단 후 초기일수록 효과가 더 우수한 만큼 신속한 사용이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희귀질환용 의약품, 신속한 건보 적용 필요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척수성 근위축증 같은 희귀질환은 세계적으로 5000여개나 된다. 국내에도 1000여개, 100만여명이 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 5000여 질환 가운데 치료제가 개발돼 있는 경우는 5% 정도에 불과하다.
희귀질환은 환자가 극소수인 데다 효과 및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임상시험 진행이 까다로워 치료제 개발이 매우 어렵다. 운 좋게 치료약이 나왔다 해도 고가여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으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는 희귀질환의 경우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건강보험 의약품에 등재만 되면 본인부담 10%를 적용해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고 저소득층은 10% 본인부담금도 지원하고 있다. 척수성 근위축증도 산정특례 대상 질환에 포함돼 있어 급여 등재만 되면 혜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등재율은 항암제 등 일반 신약에 비해 높지 않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가 2007년 8월∼2015년 11월 심평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보 급여 등재율은 58%로 항암제(61%)보다 낮았다. 희귀질환 치료제가 식약처 허가 후 2년 이내 보험 급여에 등재될 확률도 48.4%에 그쳐 일반 신약(61.2%)보다 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희귀질환용 의약품의 허가 후 급여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은 25.3개월로 비희귀질환 치료제(15.1개월)보다 10개월 넘게 더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 보호자인 정민준씨는 “희귀질환 치료제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까지 빨라야 2년이 걸리는데, 아이들 병이 매일 나빠지고 있어 그때까지 버텨줄지 걱정이 크다”고 했다.
채종희 교수는 “소아 환자가 많은 희귀질환의 특성상 조기부터 빠르게 치료해야 아이들의 증상이 효과적으로 개선되고 잘 성장할 수 있다”면서 “이런 특수성을 감안해 오랜 시간이 걸리는 희귀질환용 의약품의 보험 급여 등재 절차를 개선해야 한다. 눈앞에 치료제를 두고도 쓰지 못하는 비극이 더 이상 발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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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3-06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