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중도좌파의 추락

입력 2018-03-05 05:05
이탈리아 총선이 실시된 4일(현지시간) 로마의 한 투표소에서 파올로 젠틸로니 총리가 투표하고 있다. AP뉴시스

이탈리아에서 4일(현지시간) 실시된 총선 결과 누가 집권하게 될지는 개표가 끝나야 알 수 있다. 절대 다수당이 없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집권 중도좌파 민주당의 참패다. 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줄곧 우파연합과 오성운동에 밀려 3위를 기록했다. 민주당이 실권하면 유럽의 큰 나라 중에서 중도좌파 정부는 한 곳도 없게 된다.

이날 독일 중도좌파 사회민주당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기독사회당 연합과의 대연정 합의안을 승인했다. 당원 찬반투표 결과 66%가 찬성했다. 올라프 숄츠 사민당 임시대표는 “이제 사민당은 명확히 차기 정부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보수세력 주도의 연정에 참여를 원치 않는 당원이 많았지만 당 지도부는 지지율 급락을 우려해 찬성투표를 독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제 사정이 딴판임에도 중도좌파 정당의 추락은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파리정치대학 장 로브니 교수는 “두 당은 유권자의 구조적 변화로 고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도좌파 정당의 몰락을 가져온 변화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전통적인 지지층인 노동조합이 약해졌다. 블루칼라 프롤레타리아(노동자)가 고용·노동 상황이 불안한 ‘프레카리아트(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로 분화된 탓이다.

여기에 이민·난민 이슈가 보수적인 노동자 계층과 고학력 진보주의자 사이를 갈라놨다. 영국 정치학자 매튜 굿윈은 “유권자들은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민·난민 문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데, 중도좌파 정당은 여전히 경제 관련 내러티브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곳은 영국 노동당이다. 제러미 코빈 대표가 경제적 불만이 큰 젊은층을 잘 포섭해 세력을 키우는 중이다. 독일 사민당 내에선 코빈처럼 중도주의를 버리고 노동자 쪽으로 노선을 확실하게 하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민당은 최근 지지율이 역대 최저인 15.5%를 기록해 신생 극우 대안당(16.0%)에 2위를 내줬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