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82년생 김지영’을 만든 사람들
② 선언자의 용기, 가해자의 이중성, 방조자의 침묵
③#미투-제도 변화부터 시작
④일상의 #위드유를 향하여
여학생들은 성폭력 피해자 우스운 이야깃거리로 삼은 사람들은 방관자였다
몰카 보다가 적발된 남성들 성범죄자 만들려고 한다며 되레 피해자를 가해자 취급
여자의 일생엔 다양한 양상의 성폭력이 동반된다. 일상 속 성폭력의 지점들은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피해자 김지영’을 만든 사람들의 태도를 짚어보면서 법과 관습의 좁은 틀을 넘어 성폭력의 경계를 넓혀봤다. 우리 사회의 일상화된 성폭력을 촘촘하게 점검해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여자라는 ‘꽃’
성폭력 문제를 둘러싼 담론 가운데 ‘예쁘다는 칭찬이 왜 언어 성폭력인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적잖다. 소설의 사례들은 왜 그런지를 설명해준다. “너희는 그냥 동아리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우리한테 힘이 되는 거야.” “저 선배한테 힘 돼주려고 나오는 거 아닌데요?”
외모에 대한 칭찬은 권력의 상하관계를 거스를 수 없는 말이다. 면접을 보는 취업준비생이 면접관의 외모를 언급하지는 않는다. 처음 등교한 학생이 교장에게 직접 외모를 칭찬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칭찬이라는 것 자체가 권력자에게서 아래로 내려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는 문화도 여자를 ‘꽃’ 취급하는 걸 가능하게 한다. 그러면 신입사원 면접에서 이런 말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 “여러분이 거래처 미팅을 나갔단 말입니다. 그런데 거래처 상사가…괜히 어깨도 주물주물하고, 허벅지도 슬쩍슬쩍 만지고, 엉?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오랫동안 성폭력을 경험해 온 여성들은 이런 질문을 받으면 회피하거나 이런 폭력을 수용해 왔다. “제 옷차림이나 태도에 문제는 없었는지 돌아보고, 상사분의 적절치 못한 행동을 유발한 부분이 있다면 고치겠습니다” 하는 식이다.
이런 대답을 한 면접자는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도 짐승이 돼야 한다’며 스스로를 합리화한 적극적인 방조자로 분류할 수 있다. 미투 운동으로 밝혀진 방조자들은 이런 사고방식을 피해자들에게 강요하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왜 그랬을까
성폭력이 가장 흔한 장소는 학교다. “굳이 팔뚝 안쪽으로 손을 넣어 부드러운 살을 꼬집고, 엉덩이를 두드리거나 브래지어 끈이 지나는 등 가운데를 쓰다듬는 남자 교사가 꼭 있었다. 이름표 검사를 핑계로 가슴을 쿡쿡 찌르고, 교복 검사를 핑계로 치마를 들추곤 했다.”
최근 미투 운동에서 밝혀진 가해자들 대부분도 ‘선생’이었다. 가르칠 뿐 아니라 평가하고 점수를 주고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은 이렇게 이용됐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일상 속 크고 작은 권력자는 종종 ‘변태’로 희화화된다. 고은 시인이나 이윤택 연출가의 성폭력이 ‘예술가의 기행’으로 포장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릇된 행동 자체를 문제로 인식하기보다 개인의 가벼운 일탈로 여기면서 ‘어쩔 수 없는 일’ 정도로 치부해 왔다. 하지만 여학생들은 성폭력 피해자였고, ‘변태 교사’는 가해자였으며, 이를 황당하고 우스운 이야깃거리로 삼은 자들은 방관자였다.
남자 짝꿍의 장난
성폭력을 최초로 경험하는 장소는 보통 가정 아니면 보육·교육기관이다. 강도 높은 성폭력이 아니더라도 또래의 행동에서 성적 수치심을 겪는 일은 의외로 흔하다. 소설 속 김지영씨도 그랬다. “짝꿍은 어느 날부턴가 김지영씨를 툭툭 건드리고 괴롭혔다.”
김지영은 도움을 청했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교사는 “오해다. 널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친구의 장난에 운다고 혼냈다. 언니는 “남자애들은 원래 유치하니 무시하라”고 했다.
원치 않는데 툭툭 건드리고 괴롭히는 것은 폭력이었고 김지영은 이 때문에 힘들었다. 교사, 부모, 선배(언니)는 관습에 의거한 방관자였다. 어린 가해자인 남자 짝꿍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자랐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잘못이 잘못인지 모른 ‘무고한 가해자’를 만들어냈다. 어린 피해자만 ‘정체모를 괴롭고 힘든 감정’을 겪어내야 했다. 성폭력이 만연한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교육부터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좋아한 것 아니었어?”
성폭력 가해자들의 전형적인 해명 레퍼토리 중 하나는 “서로 좋아서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상대의 의사를 들은 적도 없고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그동안 행동을 유추해본 혼자만의 결론일 때가 많다.
소설 속에 나오는 대목이다. “(버스) 몇 번 타세요?” “네? 왜요?” “데려다 줬으면 하시는 것 같아서.” “아닌데요. 가세요.” 이런 질문을 건넨 남학생은 결국 김지영을 쫓아왔고, 도망치는 김지영에게 이렇게 퍼붓는다. “너 항상 (학원에서) 내 앞자리에 앉잖아. 프린트도 웃으면서 주잖아. 만날 흘리다가 왜 치한 취급하냐?”
성폭력 피해자는 이런 식으로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소설엔 회사 여자 화장실에 설치된 몰래카메라를 직원들이 돌려보다 적발되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기서도 피해자들은 가해자로 몰린다. “조사받은 남자 직원들이 우리한테 너무했대. 그냥 아무나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좀 본 거 가지고 성범죄자를 만들려고 한다면서.”
이 사건에서 가장 위험한 성폭력 방조자는 ‘법’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몰카 화면을 보는 것 자체는 처벌을 받지 않는다. 공소시효만 지나도 더 이상 범죄가 안 되는 게 성폭력이다. 피해자는 영원히 고통 받지만 가해자는 가볍게 빠져나갈 수 있다. 성폭력 문제를 법이나 제도로만 해결할 수 없는 건 그래서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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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3-05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