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를 일상의 위드유로] 어려서 스며든 ‘몹쓸짓’… ‘82년생 김지영’ 누가 만들었나

입력 2018-03-05 05:01

아동→초중고→성인까지 관습 아래 다양한 성폭력
#미투 운동은 ‘모두의 사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 반영


우리 대부분은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의 당사자다. 성폭력의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거나, 방관자다. 지금껏 우리 일상에서 온갖 성폭력이 만연해 있었던 것, 그 심각성을 알아채지도 못했던 것, 알지만 구태여 끄집어내려 하지 않았던 것…. 이 모든 게 문제를 키워왔고 끊임없이 새로운 피해자들을 만들어 왔다.

수긍하기 힘든 지적일지 모른다. ‘나는 아니다’는 반박이 즉각 튀어나올 수 있다.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해 놓은 성범죄를 저지르진 않았을지라도 성폭력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사람은 찾기 힘들다. 30, 40대 여성이 일생 동안 겪어온 성차별 문제를 고발하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사소한 것부터 심각한 상황까지 그 지점들이 확인된다.

여자의 일생엔 아동시절부터 신체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는 초·중·고등학생 시절, 성인이 된 이후까지 다양한 양상의 성폭력이 동반된다. 책은 이 사실을 평범한 여성 김지영씨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좇으며 성폭력을 겪은 지점을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소설 속 김지영은 초등학생 시절 짝(툭툭 몸을 건드리는 장난), 중고등학교 시절 교사들(원치 않는 신체 접촉), 동네 바바리맨, 시내버스 성추행범, 화장실 몰래카메라 등 온갖 종류의 성범죄에 노출돼 있다. 그가 유난히 당한 게 아니라 이 시대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일상적으로 노출된 성폭력인 셈이다.

미투 운동은 모든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며, 더 이상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선언이다. 홀로 감당해 온 수많은 피해자들에게 건네는 연대이기도 하다. 당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도’ 겪은 일이고 ‘모두의 사건’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지금 진행되는 미투 운동의 동력 중 하나는 ‘치유’와 ‘연대’에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 상당수는 도움을 청할 만한 곳조차 찾지 못해 왔다. 미투 운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고 피해 사실을 고백할 힘을 얻고 있다. 성폭력 피해를 호소해봐야 돌아왔던 것은 무력감과 좌절감뿐이라는 경험이 바뀌고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부정적인 학습효과가 “이제는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로 변하고 있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제는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인을 주는 것 자체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치료적 관점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며 “잘못된 관행과 문화가 바뀌는 첫 걸음을 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미투 운동이 폭로전처럼 다뤄져서도, 지겨운 이야기로 여겨져서도 안 된다. 문화예술계나 학계를 넘어 일상으로 파고들어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미투에서 ‘위드유 운동(#WithYou·당신과 함께하겠다)’로 이어져야 한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미투 운동으로 누군가 피해를 입었을 때 ‘난 어떤 태도를 보였나’ ‘가해자와 친분이 있을 때 내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나’ 이런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