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훈련 재개 前에”… 절박한 대화 잇기

입력 2018-03-04 19:26 수정 2018-03-04 22:53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진행 중이던 2017년 3월 14일 미 해군 제3함대 소속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 갑판에 FA-18 전투기가 내려앉고 있다. 청와대는 올해 한·미 연합훈련 재개 이전 북·미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한 대북 특별사절단 파견 계획을 4일 발표했다. 국민일보DB

진전 없이내달 훈련 재개땐 北 도발·美 제재 회귀 우려
김여정 방남 답방 형식이지만 북·미 대화 설득 초점 예상
특사단, 김정은 면담 뒤 방미 트럼프 만나 방북 결과 설명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 5일 파견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로 내려온 지 한 달도 안 돼 성사됐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한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귀환한 지 엿새 만이다. 남북 교류사에 전례가 없는 속도전이다.

문 대통령의 시계는 4월 한·미 연합 군사훈련 재개에 맞춰져 있다. 훈련 전인 3월 중 북·미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절박감이 크다. 북·미 간 유의미한 접촉 없이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면 북한이 도발하고 미국이 제재하는 평창 이전의 악순환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사절단이 김정은 위원장을 면담한 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외교소식통은 “이달 중 북·미 대화의 단초를 마련하지 못하면 남북 관계도 더 이상 진전시키기 어려워진다”며 “김정은에게 ‘이번 기회를 놓치면 미국의 대북 군사옵션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각인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절단 파견 결정 역시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이 김여정으로부터 김정은의 ‘평양 초청장’을 받은 건 지난달 10일이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빠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며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고 했다. 여건의 핵심은 북·미 대화 성사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달 김영철 방남을 계기로 북한에 비핵화 의사를 보여줄 것을 촉구하면서 미국엔 대화의 문턱을 낮춰줄 것을 요구하는 등 중재자 역할을 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로 남북 회동 결과를 설명하고 조만간 대북 특사를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다음날 북측에 서해 직항로를 통해 방북한다고 통보했다.

사절단 방북은 김여정 방남에 대한 답방 형식이다. 하지만 내용상으론 북·미 대화 설득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영철을 통해 북·미 대화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밝히면서도 이것이 비핵화 대화인지에 대해선 분명한 입장을 내지 않은 상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은 1박2일간 방북을 마치고 미국을 찾아 회동 결과를 설명할 예정이다. 두 사람은 미국에 문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파견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은 확정된 바 없다”면서도 “미국을 방문하게 되면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윗선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특사단의 방북 결과를 설명해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청와대는 정 실장과 서 원장의 미국 방문 시기는 공개하지 않았다. 방북 직후 미국 방문이 이뤄지면 미국 대표단 방한→북한 대표단 방남→대북 사절단 파견→대미 특사 파견 흐름이 이어지게 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최고위급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들어보는 게 사절단의 중요한 목표”라며 “포괄적으로 얘기해보겠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에 이어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도 북·미 대화의 장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다. 패럴림픽에 북한이 고위급 대표단을 파견할 경우 미국 대표단과 여러 기회에 만날 여지가 생기는 셈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