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수석으로 하는 대북 특별사절단이 5일 방북한다. 특사단은 김정은을 만나 북·미 대화에 대한 생각을 확인할 계획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만 가능하다고 천명한 미국을 설득할 김정은의 대답을 이끌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마음을 졸이며 특사단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나친 기대를 자제하며 차분하게 지켜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사단이 이틀 만에 북·미 대화를 진전시킬 결정적 모멘텀을 마련하기는 힘들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가 빠진 북한과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 이후 나온 백악관 발표문에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가 새삼 강조됐다. 핵을 머리에 얹고서는 북한과의 평화 공존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핵심적인 원칙이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비핵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핵과 경제 건설의 병진을 기본 노선으로 채택했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지 몇 개월 만에 핵을 포기하는 과정에 진입한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이다. 오히려 핵 이슈를 적당히 주무르며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얻어낼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평창 패럴림픽이 끝나면 한반도에서 무력충돌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4월 위기설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하지만 조급할 필요는 없다. 북한이 이번에도 평화를 향한 열망을 무시한다면 어렵게 조성된 화해 분위기는 급속히 경색될 수는 있다. 그렇지만 특사단이 북·미 대화를 중재하지 못했다고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서두르거나 무리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직접 확인한 북한 수뇌부의 생각을 분석해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당장의 성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사단 수석인 정 실장은 백악관과의 소통을 담당한 핵심 채널이다. 백악관의 생각을 북한에 설명할 적임자로 부각됐지만 사실 김정은의 생각을 트럼프 행정부에 누구보다 잘 전달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서훈 국정원장 역시 남북회담 실무 활동 못지않게 미국 정보 당국과의 긴밀한 관계가 장점이다. 미국과의 대북 공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북핵 위기를 한 번에 해결할 묘수는 없다. 북한이 스스로 생각을 바꿔 비핵화 과정에 스스로 참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방법은 이제 전 세계가 알게 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다. 긴장이 고조되지 않도록 관리하되, 대북 제재의 틀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게 문재인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사설] 김정은 만날 대북특사단, 성과에 연연할 필요 없다
입력 2018-03-04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