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도전… 촛불혁명 참여 경험이 최대 무기
SNS 통한 의정 활동 계획 세우고 매주 일요일에 만나 전략 논의
“평범한 이들 함께 만드는 게 정치… 삶과 분리돼 있다고 생각 안해”
지역 문화 창출 등 사업 모색하고 ‘정직·투명’을 공약으로 삼기도
‘대통령도 끌어내렸다. 우리 동네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6·13 지방선거 기초의원에 무소속으로 도전하는 20∼30대 청년들이다. 정당 활동 경험도 없고, 근사한 이력도 없다. 2016년 촛불혁명을 통해 직접 민주주의에 참여한 경험이 가장 큰 무기다.
‘정치도 바꿀 수 있다’가 이들의 캐치프레이즈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김종현(35)씨는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서 동네 책방을 운영한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를 공개 제안했다. 그는 “촛불 집회를 통해 사람들이 정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느끼기 시작했다”며 “권력이 국민인 나로부터 나온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직접 출마하는 것은 어떨까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선거 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청년들이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기초의회라고 판단했다. 구의원 프로젝트를 제안했던 이유다. 김씨의 제안에 흥미를 느낀 청년들이 하나둘 김씨 책방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 구의원 7명, 경기도 시의원 2명 모두 9명이 기초의회 출마를 결심한 상태다. 출마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이들도 꽤 있다.
목표는 당선이다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 참여자 10여명이 지난달 25일 염리동 책방에 모였다. 책방 한가운데 둘러앉아 각자의 준비 상황을 공유했다. 서울에서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는 김정은(38·여)씨는 서울 마포구 구의원에 출마할 예정이다. 책방이 운영하는 SNS 계정을 통해 구의원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구의원이 하는 일을 자세히 알수록, 출마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알수록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정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김씨의 선거 캐치프레이즈는 ‘이 동네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기존에는 정치가 어른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젊은 세대가 직접 참여하는 정치가 됐으면 좋겠다”며 “돈이나 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평범한 동네 사람들의 목소리를 구의회에 담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출마자들은 당선이 목표다. 김씨는 “저는 무모한 사람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람”이라며 “당선을 목표로 최선을 다할 것이고 선거 이후에도 또 다른 방식으로 삶 속의 정치를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SNS를 통한 의정활동 계획도 세웠다. 기존 구의원들의 SNS 계정을 확인했더니, 계정이 없거나 실제 활동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구의원에 당선되면 SNS를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구의회 소식도 구체적으로 전할 생각이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옥탑방에 사는 김제형(28)씨도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해 포크 음반을 발매하고 홍대 근처에서 공연하는 청년이다. 김씨의 당선 공약은 ‘지역 내 문화예술인 지원 활성화’다. 김씨는 “서대문구에는 젊은 예술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들과 함께 여러 실험을 해보고 싶다”며 “지역의 문화 창출에도 도움이 되고 예술인들도 먹고 사는 걱정을 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래 친구들의 반응도 좋다. 김씨는 “친구들도 구의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몰랐다. 제가 직접 출마한다고 하니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했다”며 “기초의회 단계에서는 기존 정당에 소속된 사람보다 지역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할 얘기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꼭 제가 당선되지 못하더라도 이 프로젝트 참가자 중에서 당선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기초의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 구의원에 출마하는 김성미(32·여)씨도 온라인 선거운동으로 선거 비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젊은 층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씨는 “선거 운동 기간에만 돈을 많이 쓰는 것도 문제다. 구의원들이 자신의 활동을 평소에 잘 알렸다면 선거를 앞두고 왁자지껄하게 선거운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가 대표할 2030들은 선거공보물보다는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공보물 제작에 쓰이는 선거 비용도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공약은 ‘정직과 투명’이다. 구의원에 당선된다면 일거수일투족을 온라인에 전부 공개하겠다는 생각이다. 구의원 활동을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알리겠다는 취지다.
이날 회의에서는 ‘긴급 사퇴 선언’이 있었다. 서울 동대문구 출마를 결심했던 김귀경(41·여)씨가 회의 시작 전 “드릴 말씀이 있다”며 사퇴 입장을 밝혔다. 회사일이 많아 선거운동을 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작은 인터넷 쇼핑몰 회사에서 근무하는 김씨는 “회사 업무가 늘어나는 바람에 현실적으로 선거 운동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제대로 선거 운동을 할 준비가 안 됐는데 그냥 후보자 등록만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대신 김씨는 매주 회의에 참석해 다른 출마자들의 선거 전략을 함께 고민하기로 했다. 김씨는 “정치와 삶이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정치에 관심이 많아졌다. 계속 관심을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알고 뽑자 구의원” 캠페인
출마자들은 회의에서 각자 준비해 온 당선 전략과 고민을 함께 논의했다. 한 출마자는 “실제로 현역 구의원들을 확인해보니 무투표 당선자가 많았다. 2인 선거구에서 여야 1명씩 나와서 투표할 기회조차 없었던 경우”라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누가 구의원으로 나오는지도 잘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논의는 ‘출마자를 잘 알리면 해볼 만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구의원 역할을 자세히 알리는 ‘알고 뽑자 구의원’이라는 온라인 캠페인도 벌일 계획이다.
기존 선거운동과는 다른 선거운동도 고민하고 있다. ‘○○의 아들’ ‘토박이’ 같은 수식어를 붙인 대형 현수막이나 명함은 사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2년마다 거처를 옮기는 젊은 전월세 세입자들이 많은 만큼 이들을 공략해보겠다는 전략도 나왔다. 선거사무소를 차리지 않고 카페에 앉아 젊은 유권자들과 하루 종일 1대 1로 만나 대화하는 방안,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며 이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언급됐다. 지역에 따라서는 인구 분포 상 ‘2030’ 표만 받아도 당선권이라는 계산도 나온다고 했다.
다만 출마의 취지를 고려해 ‘당선을 위한 당선’을 목표로 하지 말자는 얘기가 나왔다. 또 다른 출마자는 “당선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 어떤 당선인지가 중요하다”며 “대형 현수막을 걸거나 공보물을 배포하는 기존 방식을 따르지 말고 우리만의 접근 방식을 고민해보자”고 말했다.
솔직한 고민도 나왔다. 한 참석자는 “사실 혼자서 무엇을 해내겠다는 거창한 공약은 욕심인 것 같다”며 “나도 부족하고 잘 모르지만 함께 해보자는 메시지가 더 설득력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회의는 2시간 동안 진행됐다. 프로젝트 제안자인 김씨는 “앞으로 평일에는 각자 선거캠프 전략에 따라 움직이고 다음 주말에 다시 만나 진행 상황을 공유하자”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회의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책방에서 열린다. 출마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진 젊은이들도 매주 일요일 책방을 찾아 ‘구의원 당선’을 함께 얘기하고 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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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3-05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