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서 임명됐지만 통화정책 전문성 호평
독립적 통화정책 수장으론 사실상 첫 연임 사례
한·미 금리 역전 눈앞… 금리 인상 가능성 높아져
‘전문성이 정치색을 눌렀다.’ 박근혜정부에서 임명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문재인정부가 연임시키기로 결정하자 2일 시장에서 나온 반응이다. 이로써 한은은 중앙은행으로서 독립성이 한층 강화될 기반을 마련했다. 곧 다가올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을 완화하기 위해 오는 4∼5월 한은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추진할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이 총재는 연임 사실을 통보받은 직후 “4년 전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총재의 연임은 1955년 김유택, 1974년 김성환 전 총재 연임 이후 형식적으로는 세 번째다. 하지만 당시는 독재정권 아래 한은이 재무부의 ‘남대문출장소’ 역할에 머물렀던 때다. 이번엔 다르다.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직을 맡기 시작한 1998년 이후 첫 연임 사례다. 독립성을 존중받는 통화 당국 수장의 사실상 첫 번째 연임으로 해석해야 한다.
우선 이 총재의 전문성과 강단 있는 리더십이 연임 배경으로 꼽힌다. 청와대 설명 그대로 이 총재는 통화정책에 관한 한 명실상부한 최고 전문가다. 이 총재는 2014년 취임 직후 당시 최경환 부총리의 ‘초이노믹스’에 맞춰 금리 인하 기조를 선택했지만 세월호 참사와 중동호흡기증후군 대유행으로 인해 한없이 추락하던 국내 경기를 감안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평이다. 특히 2016년 4월 박근혜정부가 ‘한국판 양적완화’를 명분으로 국책은행에 직접 돈을 찍어 지원하라고 압박했을 때 내부 대책회의에서 이 총재는 “(총재의) 직을 걸고 막겠다”며 직원들 동요를 막아냈다. 물론 145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는 짐으로 남아 있지만, 중국 캐나다 스위스 등과의 외화 안전판인 통화스와프를 성사시킨 공로도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역시 의장 임기가 4년인데 대부분 8년 이상 연임한다.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금융통화 정책은 독립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공감대 덕분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이 20년, 벤 버냉키 전 의장도 8년간 재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39년 만에 예외가 생겨났는데, 재닛 옐런 의장이 트럼프의 반대로 지난달 4년 만에 물러났다.
이 총재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등 재정과 통화정책의 공조를 뜻하는 ‘폴리시 믹스’에도 힘쓰고 있다. 이 총재 앞에는 당장 다음 달 닥쳐올 한·미 금리역전 상황에서 더욱 정교한 통화정책을 취해야 하는 과제가 놓여있다. 경기회복 불씨를 살리면서 자본유출 우려를 차단하는 묘수가 필요하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리더십 인정받은 통화전문가, 4년 더 ‘운전대’ 잡는다
입력 2018-03-03 05:00 수정 2018-03-05 1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