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국정연설서 발표 “수중드론 등 신무기 성공”
美 본토 가상 타격 영상도 공개… 美·유럽 “핵 감축에 역행” 비판
푸틴 “군비 경쟁은 미국 탓” 반박 “러 대선 앞둔 정치선전” 평가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의회 국정연설에서 “첨단 미사일방어(MD)체계를 뚫을 수 있는 핵추진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자 국제사회는 핵 감축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우려와 반발을 쏟아냈다.
헤더 노어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무책임한 발언”으로 평가하면서 “핵무기 감축협정을 파기하겠다는 증거”라고 비판했다. 또 연설 당시 신개발 미사일로 미국을 공격하는 가상 영상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지도자로서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와 함께 데이나 화이트 미 국방부 대변인은 “미국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미국을 지킬 준비가 완전히 돼 있음을 믿어도 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지난 2월 발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미사일방어 강화를 명목으로 100억 달러(약 11조원)를 책정하는 등 MD 보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된 국정연설에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르맛’과 핵 추진 크루즈미사일, 핵 추진 무인 수중 드론 등 신형 전략무기 개발 성공을 이례적으로 과시했다. 대형 화면에 신형 무기의 외형과 비행 및 타격 장면, 개념도 등을 다양하게 프레젠테이션하면서 특히 핵추진 크루즈 미사일이 “모든 방공 및 미사일 방어망을 뚫을 수 있다”며 MD 무력화와 플로리다 등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가 핵 확산과 도발의 길을 선택했다”며 우려를 표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북한이 미국을 강타할 수 있는 핵 개발에 가까워지고 핵확산 금지조약(NPT)이 잠재적으로 붕괴하는 지금, 반핵 운동가들은 (러시아의 발표로) 세계가 위험한 새로운 핵 시대로 옮겨가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냉전 해체 이후 서로 자극을 피해왔던 미·러 양국은 최근 국방력 증강에 사활을 걸며 때 아닌 ‘신(新)냉전’ 구도를 연출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연설 뒤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군비 경쟁이 다시 시작된 것은 미국이 옛 소련과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제한조약(ABM)을 지난 2002년 일방적으로 탈퇴했기 때문”이라며 미국에 책임소재를 넘겼다고 타스통신은 2일 전했다.
다만 일각에선 푸틴 대통령이 ‘무적’이라고 자랑한 신형 전략무기가 과연 실재하는지 여부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개발 단계의 무기들을 마치 실전배치된 것처럼 과장했다는 것이다. 말콤 리프긴드 전 영국 외무장관은 푸틴 대통령의 연설을 “전형적인 정치선전”이라며 “마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핵무기를 개발했으니 어느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식의 발언”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푸틴 대통령의 연설이 오는 18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국내 정치용 선전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CNN은 미 정부 관계자들을 인용해 “서방을 압박하고 러시아 대선에서 안보 이슈를 자극해 푸틴의 인기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푸틴 “핵 추진 미사일 개발”… 核경쟁 시대 문 열렸나
입력 2018-03-0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