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일과시간 끝났다”며 치매노인 방치한 지자체·병원

입력 2018-03-02 18:55 수정 2018-03-04 13:49

거리를 헤매던 독거 치매노인을 시민이 신고했지만 관할 지자체나 병원은 밤늦게까지 서로 책임을 미루며 노인을 돌보길 거부했다.

서울 영등포중앙지구대는 지난달 27일 오후 6시50분 치매노인 박모(80)씨가 횡단보도 앞에서 중심도 제대로 못 잡고 위태롭게 서있다는 신고를 접수해 그를 지구대로 데려왔다고 2일 밝혔다. 경찰이 신상정보를 물어도 의사소통이 전혀 안 됐다. 다리에 깁스를 해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 그는 몸을 벌벌 떨기만 했다.

박씨는 본인의 퇴원 의사에 따라 지난해 입원해 있었던 인천 서부의 한 요양병원에서 나와 영등포구의 한 여관에서 구조 당일까지 한 달여를 홀로 살고 있었다. 박씨는 친동생이 있지만 집안사정이 어려워 박씨를 돌볼 수 없었다. 사실상 무연고에 가까운 상태였다.

경찰은 밤이 깊어지기 전에 박씨를 안전한 곳으로 이송해야만 했다. 구호대상자를 경찰서에서 최대 24시간까지 보호할 수 있으나 밤이 깊을수록 사건이 많아지는 지구대 특성상 그를 보호하기에 적절치 않았다. 경찰은 영등포구청 당직실, 치매환자 보호센터 등 치매관련 기관에 연락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근무시간이 끝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경찰은 관할지역 내 병원과 요양병원에도 박씨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병원 측은 “치매환자가 외상을 입었거나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면 병원에 입원시킬 수 없다”고 답했다. 요양병원도 “박씨가 기초수급자고 동생이 있으니 받아줄 수 없다”며 인계를 거부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박씨 주거가 일정치 않다는 것을 파악해 동주민센터에서 방문해 조치할 계획이 있었다”며 “저녁에 갑자기 사건이 일어나 담당 공무원들이 아닌 당직실 인원이 전화를 받았고 연계가 잘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관할 지역 병원관계자는 “정확한 통화내용을 알 수 없으나 환자가 실제 문제가 있어 내원했다면 치료는 이뤄졌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경찰은 박씨가 입원했던 병원을 겨우 찾아 자정에야 박씨를 병원에 인계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무연고 치매노인들에겐 밤이 더 위험한데 정작 그 시간대 치매노인을 보호할 수 있는 기관이 없다는 게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미아·병자·부상자가 적당한 보호자가 없고 응급구호가 필요할 경우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긴급구호를 요청받은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긴급구호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박씨와 같은 치매 노인의 경우 응급구호 대상인지 명확지 않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실종치매환자는 2014년 8207명에서 2017년 1만308명으로 증가했다. 치매 관련 기관 전문가는 "밤에 길을 떠도는 치매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이 마땅치 않고 구체적인 절차도 부족하다"며 "확실한 업무 분담이 이뤄지지 않다 보니 기관 간 서로 떠넘기기를 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형민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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