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경장벽 공약으로 미국-멕시코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은 가운데 로베르타 제이컵슨(사진) 멕시코 주재 미 대사가 사임할 예정이라고 현지 언론들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통제불가 언사를 남발하는 데다 백악관의 국무부 홀대까지 겹치면서 좌절한 베테랑 외교관들의 ‘엑소더스(대탈출)’가 가속화되고 있다.
양국 언론에 따르면 제이컵슨 대사는 최근 대사관 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후임자로 누가 올지 모른다”고 밝혔다. 제이컵슨 대사는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를 지냈고, 버락 오바마 정부 당시 쿠바와의 외교 복원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중남미 전문가다.
그는 “미국과 멕시코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나의 신념과 지금이야말로 중요한 시기라는 인식 때문에 결정이 쉽지 않았다”면서 사퇴 이유를 언급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다. 로이터 통신은 “제이컵슨 대사의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포기하고 멕시코에 국경장벽을 강요해 양국 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즉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가 맞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멕시코 일간 레포르마는 제이컵슨 대사의 후임으로 에드 휘태커 전 AT&T 최고경영자가 유력하다고 보도했다.
제이컵슨 대사의 사임은 최근 국무부 고위직 외교관들의 엑소더스 현상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불과 사흘 전 한국계 동아시아 전문가인 조셉 윤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사임 결정을 발표했다. 앞서 톰 섀넌 정무차관 역시 은퇴를 선택하는 등 고위 외교관들이 사퇴를 선택함으로써 백악관에 항의를 표출하는 분위기다.
미 외교협회에 따르면 트럼프 정부 출범 1년간 고위 외교관의 60%가 국무부를 떠났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 이행에 치중해 국무부의 예산과 인력을 대폭 감축한 데 직접적인 이유가 있다. 더불어 백악관이 반(反)이민 정책과 대북 강경책 통상 전쟁 등 ‘마이웨이’를 이어가면서 국무부가 소외되고, 외교관의 입지가 좁아진 영향이 크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분석이다.
제이컵슨 대사의 사임 직전 트럼프 대통령과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주 전화 회동에서 크게 말다툼을 벌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똥통(shithole)’ 발언으로 중남미 국가들을 자극했을 때도 존 필리 파나마 주재 미 대사가 “트럼프와 같이 일을 못하겠다”며 사직서를 던진 바 있다.
조셉 윤의 사임과 관련해 국무부는 ‘정책에 대한 이견 문제는 아니다’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국가안보회의(NSC)를 중심으로 대북 대화론자인 그를 집중 견제하는 등 이른바 ‘국무부 패싱’ 현상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조셉 윤은 2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백악관이 국무부에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며 소통 부재를 토로해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줬다.
정건희 기자
美 베테랑 외교관들의 ‘트럼프 엑소더스’
입력 2018-03-02 1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