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종의 환자 샤우팅] 연명의료결정제도 남용대책 세워라

입력 2018-03-04 20:17

2018년 2월4일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됐다. 정확하게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다. 더 이상 치료방법이 없는 말기 환자들이 고통을 줄이면서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보내다가 임종기에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하는 품위 있는 임종을 맞도록 하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임종기에 접어들었을 때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과 같은 생명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 시행을 처음부터 하지 않는 유보와 이미 시행한 연명의료를 멈추는 중단을 포함한다. 치료는 불가능한데 고통만을 주는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이미 시행중인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입법목적처럼 임종기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환자 본인 의사를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생전 건강할 때 환자가 직접 작성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의사가 환자 본인 의사를 물어서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 등이 환자 본인 의사 확인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건강할 때 국민들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문화와 말기환자나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뿐만 아니라 수개월 이내에 임종과정에 놓일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에게 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권유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의사가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권유하면 일부 환자들이 항의할 수 있다. 그러나 연명의료결정법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본래 취지를 고려하면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을 통해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환자 본인의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환자가족이 임종기 환자의 의사를 대신 결정해야 하는 큰 부담을 떠안기 때문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등이 없어 환자 본인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면,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에 의하거나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에 의해 연명의료결정을 예외적으로 할 수 있다.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환자가족 2인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이나 전원의 합의에 의해 예외적으로 연명의료결정을 허용하는 경우에는 의료비 부담이나 재산 상속 등 경제적 이유로 남용될 우려가 있어서 엄격한 절차를 요구한다. 다만, 가족의 범위가 너무 넓어 현실과 맞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법률에는 가족 범위로 배우자, 직계존속, 직계비속과 이들이 모두 없을 때 형제자매로 규정하고 있다. 부모 중에는 자녀의 수가 많거나 장수하는 경우 자녀에, 손자에, 증손자까지 직계비속의 수가 많은 경우도 있다. 또한 고령화 시대에 장수하는 어르신도 많아서 증손자의 연명의료결정 시에 직계존속인 손자, 자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까지 모두 동의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가족의 범위를 배우자, 부모, 자녀로 하고, 이들이 없을 때 직계존속과 직계비속 전원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연명의료결정법은 환자 본인의 의사가 아닌 환자가족 2명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이나 전원의 합의에 의한 연명의료결정까지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계, 환자단체 등에서는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환자가족이 경제적 이유로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악용할 소지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연명의료결정제도 남용 방지책은 필요하다.

안기종<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