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 너무 엄격… 적극 저항 없었다면 인정 안돼

입력 2018-03-02 05:05

지난해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성폭행 피해 사례 중 절반 정도는 현행법상 강간죄로 처벌하기 어려운 것으로 드러났다. 국내 형법은 폭행 또는 협박이 존재하는 경우를 강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내 법조계는 이를 가장 좁은 의미로 해석한 ‘최협의설’을 준용하고 있어 성폭행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시했어도 가해자의 폭행·협박이나 피해자의 적극적 저항이 없었다면 강간죄로 인정받기 힘들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1일 발표한 ‘2017 상담통계 및 상담 동향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이곳에서 상담 받은 성인 강간 피해자 124건 중 최협의설에 따른 강간죄 구성 요건을 충족한 경우는 12.1%(15건)였다. 이 15건은 가해자가 심각한 수준의 폭행·협박을 했거나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 또는 도망친 경우다. 단순히 울면서 거부하거나 거절 의사만 표시해 강간죄 구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례는 43.5%(54건)였다. 나머지 55건(44.3%)은 상담 내용만으로 판정하기 힘든 경우였다.

실제로 지난해 한 연예인 지망생이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나 검찰은 “폭행·협박이 없는 비동의간음은 법률상 처벌하기 어렵다”며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최근 최협의설을 벗어나 당시 상황과 피해자·가해자 관계를 고려하고 피해자가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이유를 적극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판결이 많아지고 있다”면서도 “비동의간음죄 신설 등 더 적극적·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