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당 없는 ‘재량노동’ 확대하려다… 잘나가던 아베 ‘백기’

입력 2018-03-02 05:05

아베 신조(安倍晋三·얼굴) 일본 총리가 올해 핵심 과제로 밀어붙이던 ‘일하는 방식 개혁’ 입법에 제동이 걸렸다. 야권이 아무리 반대해도 수적 우위를 앞세워 법안 처리를 강행해 온 아베 정권이 백기를 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아베 총리는 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하는 방식 개혁 법안에서 재량노동제 대상 확대 부분을 전면 삭제했다”고 말했다. 관련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재량노동은 실제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미리 정해놓은 시간만큼의 임금을 주는 제도다. 적용 대상이 기획업무 분야로 한정돼 있었는데, 아베 정부가 재계 요구를 받아들여 이번에 일부 영업직으로 확대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재량노동 확대는 수당 없이 노동시간만 늘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론이 나오는 와중에 정부가 ‘가짜 데이터’를 사용한 것이 드러났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월 “재량노동제가 적용되는 노동자의 근무시간이 일반 노동자보다 짧다는 데이터가 있다”고 말했다가 그런 데이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발언을 철회하고 사과했다. 이후에도 후생노동성의 관련 데이터에서 오류가 잇따라 발견돼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아베 총리는 여당 내에서도 우려가 커지자 일단 후퇴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마이니치신문 등 현지 언론은 “오는 9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실적을 쌓으려던 아베 총리의 전략에 차질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총재 3연임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얘기다.

기세가 오른 야권은 일하는 개혁 법안에서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도 삭제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야권은 법안 중 ‘시간외노동 상한 규제’와 ‘동일노동 동일임금’만 받을 태세다.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는 일부 고수입 전문직을 노동시간 규제에서 제외하는 것으로, 재계가 재량노동 확대와 함께 도입을 요구해 온 제도다. 이날 예산위 질의에서 오쓰카 고헤이 민진당 대표가 이 제도의 삭제를 요구했으나 아베 총리는 “예정대로 법안에 넣을 것”이라며 거부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