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17조원, 사상 최대… 1년 전보다 30조원대 증가
주식·부동산·가상화폐 등 투자처 마땅찮아 계속 늘 듯
은행권 정기예금 잔액이 지난해 말 617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기예금은 기껏해야 연 1% 후반의 금리를 주는 매우 ‘짠’ 금융상품이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그나마 ‘쥐꼬리 이자’라도 챙기려고 은행 예금에 묶여있는 것이다.
저금리 시대를 벗어나 금리상승기에 접어들었지만 주식은 불안하고 부동산 투자도 규제 탓에 어렵다. 암호화폐(가상화폐) 투자마저 정부가 사실상 제한하고 있다. 갈 곳 없는 돈은 당분간 차곡차곡 은행에 쌓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말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617조4699억원으로 1년 전보다 30조4933억원(5.2%) 늘었다고 1일 밝혔다. 정기예금은 역대 최저금리 시대에도 연중 계속해서 증가폭을 키워왔다. 지난해 12월에 기업의 연말자금 수요로 10조원 정도 잔액이 살짝 줄었었다.
5대 시중은행 역시 정기예금 잔액이 지난해 말 기준 527조2659억원으로 1년 사이 4.40% 뛰었다. 증가율은 NH농협은행 7.90%, KB국민은행 6.60%, KEB하나은행 4.32%, 신한은행 1.74%, 우리은행 1.23% 순이다.
저금리에서도 정기예금이 늘고 있는 배경에는 기업의 투자 기피가 자리 잡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기예금은 개인보다 기업이 큰 손인데, 만기 1개월 혹은 3개월짜리 예금에 여유자금을 넣어놓고 투자 환경을 관망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불확실하자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보다는 유동성 확보 쪽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단기부동자금 비중도 크게 늘었다. 단기부동자금은 6개월 미만 정기예금을 포함해 현금,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등 만기가 짧거나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한 금융자금을 말한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말 단기부동자금은 1072조원을 돌파했다. 시중에 풀린 돈을 뜻하는 광의통화(M2) 대비 단기부동자금 비중은 42.4%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다. 중장기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시중에 넘쳐나는 것이다. 이 돈이 부동산 재개발·재건축, 가상화폐 투기 등으로 몰려다니는 현실이다.
정기예금 증가세는 올해도 지속될 전망이다. 가계대출을 늘려온 은행들은 하반기부터 강화된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율) 규제를 적용받는다. 타개책으로 만기 1년에 연 2%대 금리의 특판 정기예금을 늘리는 식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리도 오르고 있고, 주식·부동산·가상화폐 투자도 마땅치 않다는 점에서 예금 조달엔 큰 무리가 없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저금리에도… 갈 곳 잃은 돈 정기예금에 몰려
입력 2018-03-02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