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강주화] 성폭력 예술인 정부 지원 배제해야

입력 2018-03-02 05:05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후속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회의원, 변호사, 중견 시인, 교수, 시민운동가, 관료의 발제와 의견 발표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주최로 지난 28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였다. 거의 끝나갈 무렵 한 여성이 마이크를 들었다. 자신을 문단 성폭력 피해자라고 밝힌 윤미경(가명)씨였다.

울분에 차 있었다. 윤씨는 “피해자인 나는 이 발언권을 얻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기다렸다”며 “문단 성폭력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인데 왜 피해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느냐”고 질타했다. 피해자의 얘기를 ‘경청’하는 것이 가장 기본이라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한 피해자의 방송 인터뷰를 소개했다. 그는 “피해자가 이야기를 마친 뒤 마지막에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더라. 나는 그 순간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해자가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아픔에 절절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이어 가장 중요한 후속 조치 하나를 제시했다. 가해자가 다시 ‘문화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성추문 문인을 주요한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앉혀서는 안 되고 성폭력 전력이 있는 연출가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기획 공연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2차 피해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윤씨는 “A교수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얼마 전 등단을 하게 됐다. 그런데 그 문예지 심사위원이 하필 A교수였다. 피해자는 수상소감에 자신을 고통의 나락에 빠뜨린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 할 비참한 상황에 놓였다.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단원들을 상습 성추행한 연극연출가 이윤택씨가 정부 지원을 받아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경우를 상상 해봐도 마찬가지다.

문화체육관광부 등 공공기관은 예산 지원을 심의할 때 성폭력 가해 이력이 있는 예술인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해야 한다. 문단은 성폭력 전력이 있는 문인을 문학상 심사위원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것이 윤씨와 같은 ‘미투 운동’ 참가자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이다.

강주화 문화부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