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자기 민족을 사랑했던 사람이다. 모세가 40일 동안 시내산에 올라 있을 때 산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절하며 야단이 났다. 하나님은 “나는 이 백성들에게 신물이 났다, 이제 내가 이 백성을 멸하리라”(출애굽기 32:10) 말씀하신다. 하지만 모세는 “이 백성을 용서치 않으시고 여기서 죽이신다면 나도 이 백성들과 함께 죽겠다”(출애굽기 32:13)고 결연히 맞선다. 사도 바울도 로마에 있는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나는, 육신으로 내 동족인 내 겨레를 위하는 일이면, 내가 저주를 받아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로마서 9:3)라고 말한다. 성서의 위대한 인물들은 자기 민족의 고난을 끌어안고 깊이 고뇌했던 신앙인들이었다.
윤동주도 그런 인물이었다. 27살 짧은 인생을 살고 간 그의 시들에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어떤 힘이 있다. 우리 민족이 당하는 고난을 아파하며 한 자 한 자 그것을 아름답게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성서를 소재로 한 시도 몇 편 남겼다. 그중 하나가 ‘팔복-마태복음 5:13∼22’이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렇게 시작한 시는 이 구절을 모두 여덟 번 반복한 다음에 “저희가 永遠(영원)히 슬플 것이요”라고 마무리한다. 1940년 12월에 쓴 시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수탈과 폭압이 극심했던 시절이었다. 어떤 기대도, 어떤 희망도 말할 수 없을 때 시인은 ‘슬퍼하는 자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도 감히 거부하고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고통의 심연에서 시인은 십자가를 본다.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그가 다니던 북간도 명동교회의 첨탑(尖塔)을 보며 지은 시다. 그리고 만약 자신에게도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라고 노래한다.
실제 일제 치하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의 십자가를 지고 조용히 피를 흘렸다. 3·1운동의 주역은 그리스도인들이다.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는 1600만명 정도였는데, 그중 그리스도인은 20만명에 불과했다. 1.3%가 채 안 된다.
하지만 이 극소수 그리스도인들은 민족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했다. 당시 만세운동의 대부분을 교회가 주도했다. 교회가 독립운동의 혈맥이 되어 전국적인 시위를 주도한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일제는 교회에 대해 대대적인 보복을 가했다. 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이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일제는 이 근처 15개 교회에서도 이런 식으로 예배당을 불사르고 교인들을 죽였다.
성서의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다. 불의를 용납지 않으시고 미워하시며 모든 불의한 세력을 꺾으시는 분이다. 성서의 하나님은 무고한 자들의 고난을 외면치 않으시고 그들의 고난의 의미를 땅에 흩으시지 않으시는 분이다. 3·1운동의 정신은 바로 그런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신앙이 역사 안에서 행동으로 나타난 사건이다. 결국 고난당하는 우리 민족에게 ‘출애굽의 은총’을 베푸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서 5:1)고 성서는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갈라디아서 5:13)고 권면한다. 하지만 이렇게 경고한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라디아서 5:14-15).
남과 남이, 남과 북이 서로 물고 먹으면 우리는 피차 멸망할 것이다. 다시 종의 멍에를 메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은총으로 주신 이 자유를 각자의 욕망의 기회로 삼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더 큰 복을 받는 민족이 되기를 3·1절 99주년에 간곡히 기원해 본다.
장윤재 이화여대 교목실장
[바이블시론-장윤재]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입력 2018-03-01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