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균의 현장보고] 그 때 의사가 환자를 마구 때렸다… 도대체 왜?

입력 2018-03-04 19:40
서울대병원 62병동은 과거에는 폐쇄병동으로, 현재는 보호병동으로 불린다. 외부와 격리된 이곳에서 벌어진 의사의 환자 구타는, 그것이 서울대병원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을 준다.

지난해 한 통의 제보 메일을 받았다. 이메일에는 1990년대 중반 서울대병원 정신과 보호병동에서 의사가 환자를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보자는 “충격적이어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고 적었다. 현재 서울대병원에는 폐쇄병동이 없다. 대신 ‘보호병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곳은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환자와 의료진을 제외하면 외부에서 알기 어렵다. 제보자들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의료진이라는 점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국내 최고 권위의 서울대병원에서 은밀하게 벌어진 환자 폭행은 비단 한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H교수가 깊숙이 개입돼 있었다.

보행불편 환자에 “제대로 걸어”

1995년 서울대병원 62병동(정신과 폐쇄병동)에 김수빈(가명)씨가 입원했다. 김씨는 교통사고 이후 정상 보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번은 H교수가 김씨를 병동 내 별도의 공간으로 데려갔다. 문이 잠겼다. 그리고 폭행이 시작됐다. “(H교수는) 환자의 머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환자에게 제대로 걸을 것을 명령했다.”(제보자 A씨의 증언)

구타는 3시간여 동안 이어졌다. H교수의 난폭한 ‘치료’를 두고 의료진 사이에선 뒷말이 오갔다. 그러나 환자의 적극적인 항의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왜일까? 다음의 말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당시만 해도 ‘의사가 왕’인 분위기가 팽배했다.”(제보자 B씨의 증언) 또한 폐쇄병동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기 때문에 환자들은 극도로 위축된다.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당시 환자들은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환자 김씨는 ‘특별치료’ 이후 별도의 항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1998년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던 정명윤(가명)씨는 양극성장애를 앓던 환자였다. 그는 종종 돌출행동을 했다. 한번은 그가 병실에서 모습을 감춰 병동이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 있었다. 몇 시간 후 제 발로 돌아온 그를 H교수가 찾아갔다. 곧 병실에서는 2회에 걸쳐 뺨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당시를 떠올린 제보자 C씨는 “때리는 소리가 병동에 다 들릴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의사가 환자를 때린 사실이 알려지면 큰일이었다. H 교수는 의료진을 모아놓고 본인이 왜 때릴 수밖에 없었는지를 강변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는 게 괴로웠다. 그러나 문제를 삼으면 그 사람만 바보가 되는 분위기였다.”(제보자 C씨의 증언)

양극성장애 환자는 조증과 우울의 양 극단을 오가며, 우울할 시 정상인보다 더 심한 자괴감과 모멸감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H교수에게 맞은 후 정씨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졌다는 게 당시 상황을 지켜본 제보자 D씨의 증언이다. “환자는 눈에 띄게 의기소침해졌다. 이후 그는 퇴원했다. 진위를 확인할 순 없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1996년 H교수가 1시간에 걸쳐 이십대 여성 환자를 폭행한 사건은 서울대의대 정신과에선 공공연한 비밀이다. “폐쇄병동에 젊은 여성 환자가 입원해 있었다. 일시적인 이상 증상을 앓던 환자는 말이 어눌하고 퇴행 행동을 보였다. (H 교수는) 환자에게 ‘발음이 어눌하니 말을 똑바로 하라. 어린애처럼 굴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환자는 병 때문에 그 말대로 하질 못했다. (H 교수는 환자에게) 말을 똑바로 하라며 화를 내고 윽박질렀다. 그래도 환자가 계속 이상 증세를 보이니까 그때부터 때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 가량 허벅지를 계속 때린 것으로 안다.”(제보자 E씨의 증언)

H교수가 손바닥으로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환자를 세게 때린 것은 징벌의 성격이 강했다. 지시를 하고 환자가 따르지 못하면 벌을 주는 식이었다. “환자는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H 교수는) 제대로 할 때까지 맞아야 한다면서 계속 때렸다. 환자는 한 시간 동안 빌었다. 환자의 허벅지에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살려달라”애원해도 묵살

그러나 환자의 문제는 정신과적 질환이 아닌, 다른 부위에 이상이 있다는 게 수일 후 검사 결과로 확인됐다. H교수는 의료진 십여 명을 호출했다. “전부 모인 자리에서 ‘병동에 어떤 환자가 몸에 멍이 들었다고 하더라. 혹시 병원에 구타나 이런 사건이 있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험악한 분위기였다.”

의료진들 ‘모르쇠’ 일관

당시 의국장이자 병동장이었던 H교수의 위세는 꽤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날 자리에 모인 이들은 앞서 H교수가 환자를 구타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침묵했다. “모두 알고 있었다. ‘구타가 있었느냐’고 H교수가 물으면 ‘모른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H 교수는) ‘그렇지. 모르지? 그런 일은 없었지?’라고 재차 확인했다. 다시 ‘네,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고 해야 끝이 났다. 그는 이렇게 대답을 유도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이렇게 확인했다.”(제보자 F씨의 증언)

침묵의 이유는 H교수가 이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잘리게’ 되면 타병원으로 이직도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의료진들은 H교수에게 꼼짝 못했다. 한 제보자는 “H교수는 의료진을 자를 수 있었다. 그의 뜻을 거스르면 찍혀 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 더 이상 의료인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며 “우리들은 (H 교수가 원하는) 대답을 해야 했고, 제보할 생각도 못했다. 지금도 그때 이야길 한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지금도 개탄한다”고 귀띔했다.

‘불가피한 폭력’이란 말이 있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조차 절차상의 부수적인 피해를 강조할 뿐 폭력의 필요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폭력이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잔인한 범죄라는 점이 내재되어 있다. 우리 법은 폭력의 정당성 자체를 인정치 않는다. 그리고 21세기의 한국은 수사 과정에서 벌어진 가혹행위나 교실에서 이뤄진 체벌 모두를 똑같이 ‘폭력’으로 분류한다. 같은 맥락에서 병원에서 자행된 의사의 환자에 대한 무차별 폭행은 설사 그것이 진료를 위한 것이라 해도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

왜 이제 와서 20여 년 전의 일을 들추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 말을 바꿔 논하면 20년이 걸려서야 고백할 수 있었다고 이해될 수 있을 터다. 당시 의료진 나름의 해결 모색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윗선에 교수의 ‘난폭한 폭행’을 보고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괜한 짓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암묵적 강요는 침묵하라는 메시지나 다름없었다. 제보자 G씨의 말이다. “그 당시나 지금도 그 사건을 생각하면 화가 많이 난다. 너무나 정의롭지 못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내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진료 목적 폭력’ 정당성 결여

H교수가 치료를 빙자해 환자를 구타하는 광경을 그저 바라봐야만 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병원의 권력 피라미드 하층부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H 교수는 병원 권력의 핵심부에서 승승장구해왔다. H교수의 위세에 숨죽일 수밖에 없었던 의료진들은 ‘왜 그땐 가만히 있다 지금 와서 이러느냐’고 힐난받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는 순간까지 주저했지만, 이들의 용기 있는 폭로로 20여 년 동안 묻혀 있던 진실이 드러날 수 있었다. 한 제보자는 “신이 있다면 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유동현 센터장은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무척 위축되었을 것”이라며 “(환자 폭행은) 정신건강 장애인을 얼마나 하찮게 보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센터장은 이어 “(H 교수에게) 정신과 환자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20년 지났지만 진실 밝히자

다년간 다수의 의료분쟁 사건을 담당한 법무법인 서로의 서상수 대표변호사는 “단 한 번도 의사가 환자를 폭행했다는 사건이나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충격적이다. 환자 폭행이 사실이라면 폭행죄가 성립하지만, 공소시효 등을 고려하면 현 시점에서 처벌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병원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모 대외협력실장은 “(의사가 환자를 폭행한 것은) 범죄”라면서도 병원 차원의 조사를 묻는 취재진에게 “대외협력실의 업무가 아니며 병원 윤리위원회 소관”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한 소속 교수를 둘러싼 이번 의혹에 대해 “병원의 공식 입장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취재진은 H 교수에게 입장 표명을 요구했지만,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쿠키뉴스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