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11살 두 딸 둔 영업직원 입사 27년 만에 정시 출퇴근 대신 온가족 함께 저녁 시간
1개월간 10여개 조항 강제… 일·가정 양립 ‘워라밸’ 가능
일본 맥주회사 기린의 영업부에서 일하는 미야케 세이자부로(49)씨 책상에 지난 2월 1일부터 ‘아빠를 하고 있습니다’라는 팻말이 붙었다. 1개월간 육아 체험의 대상자가 된 것이다.
4살과 11살인 두 딸을 둔 미야케씨는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밤낮없이 바쁜 영업맨이어서 육아와 가사를 맞벌이하는 아내에게 거의 맡겼다. 매일 아침 7시 전에 출근해 밤 10시쯤 퇴근했기 때문에 평일에 온 가족이 함께 저녁식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체험 프로그램 때문에 입사 27년 만에 처음으로 정시 출퇴근을 하게 됐다. 오전 9시에 나와 오후 5시30분에 지체 없이 마치는 생활이다. 야근, 잔업은 할 수 없다. 근무시간이 끝나면 업무용 컴퓨터와 휴대전화도 만질 수 없다. 대신 딸을 유치원에서 데려오고, 저녁을 직접 차리고, 온 가족이 모여 식사할 수 있게 됐다.
NHK방송은 28일 이 같은 기린 본사의 사원 육아 체험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뜻하는 신조어) 구현에 나선 대기업의 사례다.
미야케씨에게 갑자기 “딸이 열이 난다고 하니 유치원에 데리러 가세요”라는 전화가 오기도 했다. 실제 상황은 아니고 회사가 훈련용으로 불시에 거는 전화였다. 이 전화를 받으면 아무리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어도 즉시 퇴근해야 한다. 돌발 상황에 한 사람이 갑자기 빠지더라도 업무에 차질이 안 생기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훈련이다. 미야케씨도 그날 전국 영업 담당자들이 모이는 회의가 있었지만 대타를 세우고 조퇴했다.
미야케씨는 “영업은 고객이 최우선이어서 일하는 방식을 못 바꾼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기존 방식에서 고칠 게 많았다. 앞으로 부서 전체를 (이런 변화로) 끌어들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업무회의와 이메일 대응의 비효율을 바로잡았다. 주 1회 2시간씩 하던 회의를 2주에 한 번 1시간으로 줄였다. 또 일일이 이메일로 회신하던 것을 줄이고 내용을 공유하는 그룹 채팅을 늘렸다. 칼퇴근 전에 업무를 끝내려 애쓰다보니 더 효율적인 방식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사원 각자가 업무 효율화를 열심히 궁리하기 때문에 체험 프로그램 도입 이후에도 회사 매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NHK는 전했다. 기린은 향후 3년 동안 본사 직원 6500명 가운데 교대제로 일하는 공장을 제외한 전 사원에게 이 프로그램을 적용시킬 방침이다.
이 프로그램은 젊은 여직원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청량음료 영업을 담당하는 이지리 아야카씨는 장래 아이가 생겼을 때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가 불안했다. 육아에 대해 남자 상사와 동료들이 이해를 잘 못해줄 것으로 봤다. 그래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던 동료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이소자키 요시노리 사장을 직접 찾아가 제안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삽화=공희정 기자
“야근 금지… 돌발휴무 훈련” 日 기린의 ‘육아 워라밸’ 실험
입력 2018-03-01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