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문제 평행선… 北·美 ‘대화의 조건’ 헛바퀴

입력 2018-03-01 05:01
北, 적대시 정책 철회 先조치 요구
美는 “비핵화 의지 표명부터 하라”
진정성 입증할 검증 절차까지 염두

올해 美 전략자산 전개 최소화
내년 한·미 연합훈련 중단 카드로
北에 비핵화 압박… 돌파구 찾기 주목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남북 관계는 급진전되고 있지만,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됐다. 북한과 미국이 각각 생각하는 ‘대화의 조건’은 무엇일까.

북한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 대표적으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비핵화 대화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 조치’를 먼저 취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한·미 연합훈련에서 미국 전략자산 전개를 최소화하는 대신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사를 표명하는 ‘절충안’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핵 문제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부터 차이가 크다. 북한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하면 미국의 핵 위협에 노출될 것이라는 강박증이 있다.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핵을 보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합법’과 ‘불법’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북한의 핵 개발은 국제법 위반이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한·미 연합훈련은 합법적인 방어훈련이기 때문에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28일 “북한과 미국 양측 모두 체면과 명분 차원에서 상대방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라며 “북한은 미국에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이 대화의 입구라고 천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중단 등을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의 조건으로 보고 있다. 한대성 주제네바 북한대사는 27일(현지시간) 제네바 군축회의에서 “(미국은) 핵 자산 배치 등 긴장을 고조시키는 모든 도발을 중단해야 한다”며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재차 주장했다. 한·미 연합훈련과 관련된 조치가 전제돼야 남북관계 개선과 북·미 대화에 응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앞서 계춘영 주인도 북한대사는 지난해 6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대규모 군사훈련을 완전히 중단하면 우리도 핵·미사일 실험을 잠정 중단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홍 실장은 “북한은 무조건 비핵화 의지를 밝히라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최소한 올해나 내년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한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올해 연합훈련 중단은 물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일단 미군 전략자산 전개를 최소화한 뒤 내년 한·미 연합훈련 중단 카드를 갖고 북한에 비핵화 의지를 요구해야 북한도 명분이 생긴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비핵화 입장을 표명하더라도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을 믿지 못하는 미국은 비핵화의 진정성을 입증할 만한 검증 절차를 추가로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과거 북핵 관련 합의는 검증 단계에서 북한이 거세게 반발해 틀어졌다. 북한은 검증 절차가 자신들의 핵능력을 모두 노출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핵 폐기 단계에서 검증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미국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북한의 진정성만 더욱 의심하게 됐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은 검증과 사찰을 받지 않겠다는 북한의 입장을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을 설득해서 대화로 이끌어낼 수 있는 단계가 지났다고 보고 있다”며 “북한을 압박해 체제 유지와 비핵화 둘 중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게끔 하는 것이 지금 백악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사일 발사체를 활용한 인공위성 발사도 복병으로 남아 있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인 올해 9월 9일을 전후해 신형 인공위성을 발사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북한은 ‘평화적 우주 개발’을 명분으로 인공위성 발사는 군사적 도발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모든 활동을 금지하고 있어 미국은 인공위성 발사도 국제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2년 미국은 북한과 2·29 합의를 맺었으나 북한이 인공위성을 발사하자 이를 파기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