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급 시각장애인 작년말 입사… 모니터 너무 작아 눈에 부담
교체 요구했으나 거절 당해 두 달 만에 ‘망막 구멍’ 진단
사측 “장애인 채용 아니다” 업무 부적격 이유 탈락시켜
대기업 계열사에 장애인 채용으로 입사한 시각장애인이 회사 측의 무성의한 조치로 망막에 손상을 입었다. 담당팀장은 근로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장애인에게 “장애인이어서 채용한 게 아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장애인을 고용할 때는 근무에 필요한 제반 조건을 갖추도록 한 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4급 시각장애인 정지웅(32)씨는 1월 19일 망막에 구멍이 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정씨는 지난해 12월 카카오택시 콜센터를 운영하는 디케이비즈니스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눈에 심각한 피로를 느껴왔다.
정씨는 근무시간 내내 택시 기사 운행 내역이 뜨는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고도근시로 최소 28인치 이상 모니터를 사용했던 정씨에게 디케이비즈니스가 제공한 22인치 모니터는 너무 작았다. 불편을 참고 일하던 정씨는 결국 지난 1월 29일 망막 손상 진단을 받았다.
정씨 부부는 망막 손상 진단을 받기 보름 전 회사와의 면담에 “다른 회사는 모니터 큰 것 필요하냐고 먼저 물어보는데 디케이비즈니스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회사는 불만을 전해 듣고도 모니터를 교체해주지 않았다.
정씨는 이밖에도 지난 1월 중순까지 최소 4번 이상 모니터 교체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회사측 담당자와의 면담에서 ‘모니터를 바꿔달라’고 분명히 요구했다는 것이다. 반면 다음카카오는 “정씨는 병원으로부터 망막손상 진단을 받기 전에는 직접적으로 모니터 교체 요청을 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회사 측에서 먼저 교체를 권유했다”고 주장했다. 정씨가 일반적인 불만을 토로한 것일 뿐 눈이 아프다거나 모니터를 바꿔달라고 직접 요청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를 제공하지 않으면서 왜 장애인을 채용했느냐”고 항의했지만 담당팀장은 “우리는 (정씨가) 장애인이어서 채용한 게 아니라 해당 업무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채용했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가 애초에 채용 공고를 올린 곳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홈페이지였다. 디케이비즈니스는 2016년 장애인 의무고용비율 2.9%를 넘겨 장애인고용 장려금을 신청할 정도로 장애인 채용에 적극적이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장애인을 고용한 회사는 장애인이 동등한 조건에서 일하도록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정씨에게 법적 자문을 한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관계자는 “회사가 시각장애인에게 적절한 업무용 모니터를 제공할 법적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11개월 계약직으로 채용됐던 정씨는 지난 19일 수습 채용에서 탈락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모회사인 다음카카오 관계자는 “다른 장애인 근로자와 비교했을 때 정씨의 업무능력이 떨어져 탈락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디케이비즈니스가 정씨에게 공개한 수습평가서에는 장애인 평가 항목이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정씨는 “그 전에도 콜센터에서만 8년을 일했는데 이 회사에서는 일 못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며 억울해 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관계자는 “장애인 의무고용을 확인할 때만 장애인을 고용했다가 업무환경을 제대로 제공하지도 않고 수습 기간만 끝나면 내보내는 업체들이 있다”며 “장애인들은 적절한 편의를 제공 받지 못해도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잃을까봐 문제제기도 못하고, 요청을 해도 제대로 지원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회사는 정씨가 망막천공 진단서를 제출한 당일 모니터 2대 중 한 대만 24인치로 교체했다. 나머지 한 대는 사내 모니터 재고 문제로 20일이 더 지난 지난달 19일 교체됐다. 정씨가 수습탈락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단독] 장애인 뽑아놓고 편의 외면…피해자 “장애 악화되고 수습도 탈락했다”
입력 2018-02-28 18:42 수정 2018-03-07 1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