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장군의 생가가 있는 유곡면 세간리다. 장군은 현풍 곽씨로 지금의 대구 달성군 현풍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토호 집안 후손이다. 아버지는 문과에 급제해 관찰사까지 오른 곽월, 어머니는 세간리에서 누대에 걸쳐 부호로 살아온 진주 강씨 집안의 무남독녀였다. 장군은 이곳 외갓집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군은 재산을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전쟁이 끝난 뒤 그에게는 남은 재산이 없었다고 한다. 생가와 가까운 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전 재산을 털어 독립운동을 한 백산 안희제 선생 생가가 있다. 시대만 다를 뿐 닮은꼴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수령 520년쯤 됐다는 느티나무다. 현고수(懸鼓樹), ‘북을 매단 나무’다. 임진왜란 발발 열흘 뒤 장군은 이 나무에 북을 매달아 울리며 의병들을 모았다. 나무는 마치 북을 매달 것을 알았다는 듯이 2m쯤 자라다가 한쪽으로 허리를 구부린 모습이다.
현고수에서 장군의 생가로 통하는 고샅길에는 옛 돌담이 일부 남아 있다. 생가 앞에는 거대한 몸집의 은행나무가 우뚝하다. 600년이 넘은 노거수로 천연기념물 제302호다. 나무 뒤로 긴 담장으로 둘러싸인 마당 넓은 기와집이 보인다. 2005년에 복원됐다. 조선 중기 경상우도 지역의 전형적인 사대부 가옥 구조를 따랐다. 커다란 곳간이 유독 눈에 띈다. 생가 앞 광장에 백마를 타고 홍의를 입은 장군이 서 있다.
생가에서 의령읍내로 가다 보면 정곡면에 ‘탑바위’가 있다. 하나의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특이한 바위로 호미산 수직 절벽 위에 얹혀 있다. 얇고 평평한 돌판이 탑처럼 층층이 쌓여 있는 형상이다.
인근에 호미산성이 있다. 남강 변의 자연 절벽을 이용해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9부 능선에 흙과 잡석으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정상 언저리에 200m가량 흔적이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유격전을 펼쳐 왜적의 서부 경남 진출을 저지한 유서 깊은 곳이다.
의령읍 남강 속에 솥바위(鼎巖)가 있다. 모양이 솥처럼 생겼다. 바위의 반은 수면 위로 드러나 있고 반은 물에 잠겨 있다. 물 위의 모양은 솥뚜껑이고, 물 아래는 솥의 발처럼 세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고 한다.
남강 나루터인 정암진은 의령의 관문으로, 곽재우 장군과 의병이 침공하는 왜적 2000여명을 격퇴한 승전의 명소다. 장군은 전라도를 겨냥한 왜적들이 이곳으로 쳐들어올 것을 예측하고 의병을 매복시켰다. 왜적 선발대는 남강을 건널 수 있는 얕은 곳에 말뚝을 박아 본대가 도착하면 쉽게 남강을 건널 수 있도록 했다. 왜적의 의도를 간파한 장군은 왜적의 선발대가 철수한 뒤 말뚝의 위치를 진창으로 옮겨 놓았다. 장군과 의병은 진창에서 갈팡질팡하는 왜적을 공격해 큰 전과를 거뒀다. 인근 의병광장에는 곽재우 장군 동상이 남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곳곳에 의병깃발이 세워져 있어 그날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어린 곽재우는 자굴산(897m)에 들어가 1000여권의 책을 읽었다고 전한다. 이 산과 이어진 곳이 한우산(寒雨山·836m)이다. 정상 턱밑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잘 정비돼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 환상적이다. 승용차로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전망도 훌륭하다. 지리산 천왕봉과 합천 황매산 등 인근 명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해돋이와 해넘이, 그리고 별빛이 맑고 밝게 빛나 별을 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맑은 밤에는 별빛과 함께 진주시, 함안군, 합천군 일부 지역의 불빛이 손에 잡힐 듯 밝게 다가온다.
두 산 사이에 고개가 하나 있다. 소의 머리 자굴산과 소의 어깨·등인 한우산 사이에 있어 쇠목재로 불린다. 이곳을 기준으로 서쪽 칠곡면으로 내려가는 길이 ‘색소폰 도로’다. 길이 꼬불꼬불해 밤에 사진을 찍으면 악기 색소폰처럼 보인다. 어둠과 밝음이 하모니를 이뤄 멋진 한 폭의 그림이 되고 아름다운 빛으로 봄을 노래하는 듯하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와 브레이크 등의 흰색·빨간색 띠는 백마를 탄 홍의장군을 떠올리게 한다.
의령=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