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문수정] 스타들의 ‘위드유’를 기대한다

입력 2018-02-28 05:00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숨죽여 고통을 삭여 왔던 우리나라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도 용기를 북돋았다. 많은 이들이 홀로 감당해 온 아픔을 세상 밖으로 내놓았다. ‘나도 당했다’는 용감한 선언은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가해자들을 단죄하고 있다. 치유가 뒤섞인 변화의 물꼬가 트였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본질적인 변화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흐지부지 잊히고 말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스멀스멀 깃들고 있다. 몇몇 가해자들은 고발 사실을 부인하며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성추문이 터지면 흔히 등장하는 ‘꽃뱀’ ‘유혹’ ‘무고’ 등의 반박논리가 미투 운동을 폄하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언제든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릴 수 있는 고질적인 환경이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미투 운동이 할리우드와는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스타(애슐리 주드)가 거물(하비 와인스틴)을 고발했다. 금세 또 다른 스타들이 ‘미투’에 동참했다. 반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에서는 스타의 미투 선언이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를 몰아붙일 수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는 한 용기를 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스타들의 지지 움직임이 미미하다는 것도 할리우드와의 차이점이다. 세계인이 주목하는 오스카 시상식, 그래미 시상식 등에서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위드유’를 목격할 수 있었다. 오프라 윈프리, 리스 위더스푼, 나탈리 포트만, 케이트 블란쳇, 메릴 스트립, 엠마 왓슨 등 수많은 스타가 동참했다.

미투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일에도 용기는 필요하다. 사사로운 관계에 선을 긋는 것도, 배신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의외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아픔을 세상에 드러내는 용기와 그로 인해 생길 수 있는 불이익에 비할 정도는 아니다. 약자들의 용기에 스타들이 힘을 보태주면 세상이 진짜 바뀔 수도 있다. 대학로 스타의 위드유, 충무로 스타의 위드유가 기대되는 이유다.

문수정 문화부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