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초순 일간지에 참신한 기업 이미지 광고를 실었다. 중견 사진작가 A씨가 찍은 ‘선수 프로젝트(Player Project)’ 연작 작품을 활용해 공익 광고를 낸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대기업과 일했으니 저작권료를 꽤 받았을 거라는 말이 돌았다. 정작 A씨는 저작권료를 받지 못한 것은 물론 비용이 초과돼 제작비도 충당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술계에 작가의 창작 노동에 주는 대가인 ‘아티스트피(Artist Fee·작가보수)’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의 후진성과 예산 부족 탓에 작가들 역시 올림픽, 비엔날레 등 대형 이벤트 뒤에서 ‘열정 페이’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27일 “갤러리 전시를 위해 찍은 작품을 광고에 활용해 따로 저작권료는 지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 갤러리는 A씨의 사진전인 ‘선수 프로젝트’를 기획해 지난해 11월부터 서울에 이어 부산 대구 등 지역 백화점 갤러리를 순회하고 있다. A씨는 나무 등 피사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어 ‘회화 같은 사진’ 효과를 내는 것으로 유명해진 작가다. 이번엔 스노보드 이상호, 쇼트트랙 김아랑 등 선수 11명을 모델로 뽑아 이들의 연습 장면 뒤에 캔버스를 설치해 찍었다. A씨는 “조수들과 함께 1년에 걸쳐 준비하며 (평창 태능 진천 등) 지방 촬영을 하다 보니 계약금액보다 지출이 더 나갔다”고 말했다. 더욱이 전시 작품은 비매품이라 따로 판매수익을 거둘 방법도 없다.
백화점 측은 선수들에게는 모델료 대신에 A씨의 작품(점당 2000만원 상당)을 선물로 준다. 선수는 챙기면서 작가는 나 몰라라 하는 모양새가 됐다. 롯데백화점 측은 “금전적으로는 작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기업 광고를 통해 작가가 홍보되는 효과도 있다”고 강조했다.
동계올림픽에 맞춰 강원도 강릉에서 열리고 있는 강원국제비엔날레도 예산 부족 문제를 겪기는 마찬가지였다. 신생 비엔날레로서 전시 공간이 부족해 전체 예산 23억원 중 10억원이 가건물을 짓는데 들어갔다. 따라서 실제 전시 관련 집행 예산은 13억원에 그쳤다. 부산바다미술제의 16억원 보다 적은 수준이다. B작가는 “아티스트피를 합쳐 지급 받은 돈으론 제작비의 30%만 충당 됐다”며 “하지만 그거라도 없었다면 신작 출품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경한 전시감독은 “건축 비용을 제외한 가용예산의 60%를 제작 지원비에 쓰는 등 작가들의 손해와 불만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 두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많다. 다른 비엔날레에서도 제작비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작가들은 이의를 제기했을 때 ‘문제 작가’로 찍혀 다음 기획전에서 배제될 것을 우려해 속앓이만 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아티스피 문제를 두고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법정 소송도 나오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미디어아티스트 김창겸씨는 지난해 연말 대구문화예술회관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그해 8월 열린 일종의 영상 쇼인 ‘인대구미디어파사드’에 참가했는데, 계약한 제작지원비를 초과 지출한 금액에 대한 추가 지급을 요구했고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계약서를 통해 작품 제작비로 3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KTX 교통비, 회의 참석비, 음악 저작권비용, 컴퓨터 사용비, 공간 임대비 등 전체적으로 600만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공립기관 전시나 정부 비엔날레에서는 초청하는 것만으로 고맙게 생각하라는 듯 제작비 ‘후려치기’가 비일비재하다. 공공기관이 이러는데 민간이 뭘 배우겠느냐”며 “잘못된 관행에 쐐기를 박고 싶어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 공공기관이 미술 작가 작품 공모를 할 때 작가부담금을 요구하는 것도 이런 정부의 후진적 인식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지적한다. 캐슬린 김 변호사는 “미술품은 작품 제작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상품과 다르다. 때문에 예술적 가치에 대한 비용을 지급하는 문화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작품 제작을 의뢰할 때 재료비 창작비 기획비 작가보수 등 항목을 구체적으로 나누지 않고 총액으로 집행하는 것이 관행화돼 제도 정착을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재료비는 증빙이 쉽지만 아티스트피는 산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급이 되지않자 작가들이 창작비를 재료비에 넣어서 부풀려 계상하는 문제도 생겨난다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정부가 마련하는 미술 중장기계획에 아티스트피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아티스트피’는커녕 적자… ‘미술판 열정페이’ 너무해
입력 2018-02-28 05:05 수정 2018-03-02 2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