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안 알려진 시·산문·일기 등 햇빛

입력 2018-02-28 05:00
새로 발굴한 작품 다수 추가돼… 산문 ‘내가 겪은 포로 생활’엔 한국전 당시 절절한 심경 담아

“세계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는 나의 욕망과 철학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을 만족시켜 준 것이 이 포로 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수영(1921∼1968·사진) 시인의 산문 ‘내가 겪은 포로 생활’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껏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산문은 김수영 사후 50주년을 맞아 새로 출간된 ‘김수영 전집’(표지)에 최초로 실렸다. 전집을 새로 엮어낸 김수영 연구 권위자 이영준 경희대 교수는 27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열린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섬약한 기질의 시인이 전쟁의 공포를 이기고 죽음을 체험하고 얼마나 심신이 피폐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산문을 대거 발굴했다”고 밝혔다. 김수영의 시가 어떤 경로를 통해 격렬한 토로와 절규로 나올 수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산문들이다.

‘김수영 전집’은 시인의 동생이자 현대문학 편집장이던 김수명 선생이 편집한 1981년판, 2003년판이 있었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번 전집에는 이 교수가 엮은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과 새로 발굴해 낸 시 7편, 산문 22편, 일기와 편지 등이 다수 추가됐다.

이 교수는 “전쟁 직후인 54∼56년도에 발표한 산문들은 특히 김수영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주옥같은 산문들이 뒤늦게나마 발굴된 것은 서지학 연구 덕분이었다. 서지학 연구자들이 50년대 중반 다양한 출판물들을 연구하면서 문예지가 아닌 곳에 실린 김수영의 산문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겪은 포로 생활’이 실린 잡지는 ‘해군’이었다.

김수영 육필 원고를 찾아내 연구한 이 교수는 “우리나라 옛 문인들의 자필 원고는 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김수영은 아무 종이에나 휘갈겨 쓴 다음 부인에게 다시 쓰게 하고, 자신이 다시 한 번 써보는 특이한 버릇이 있어서 원본 연구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유일하게 생전에 발간된 시집 ‘달나라의 장난’도 원본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실었다. 시집 발간이 계획보다 늦어지면서 김수영 시인은 직접 속지부터 판권까지 디자인했다고 한다. 시인이 심혈을 기울인 시집을 원본 발굴로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었다.

소설을 쓰고 싶어 했던 김수영 시인의 창작욕은 일기나 산문에도 반영됐다. 일기나 에세이 중에서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들이 있다는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해 ‘콩트’로 분류된 글도 이번 전집에 2편(‘어머니 없는 아이 하나와’ ‘해운대에 핀 해바라기’) 실렸다. 이 교수는 “실생활과 달리 위악적으로 쓴 글이라는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