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진시황의 그림자는 짙고도 길다. 지금 세계가 호칭하는 ‘차이나’가 진나라에서 나왔고, 평창올림픽에서 많이 본 중국 선수들의 붉은 유니폼도 그가 애용한 불로장생의 상징색이다. 진시황을 떠올리게 하는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소리 없는 가운데 나라를 발전시킨 치적은 도량형의 통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도량형은 생산 활동에 중요한 기준이다. 지역별로 단위가 다르면 착오나 분쟁이 생겨 경제활동이 어렵다.
그래서 진시황은 길이와 부피, 무게를 재는 하나의 척관법을 만들었다. 수레의 양쪽 바퀴 사이 거리를 통일하니 교통망이 정비되고 물류가 활발해졌다. 백성들은 편리했고 나라 살림은 튼실해졌다.
현대에 와서 도량형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기능이 세분화됐다. 자연현상에서 건강 정보까지 숫자와 확률로 표시하기에 이른다. 디지털과 모바일 환경에서는 더욱 정밀한 단위를 제공한다. 사람들은 모든 판단과 결정에 이 데이터를 활용한다. 노인들이 휴대전화 앱으로 하루 활동량을 계산해 건강관리의 자료로 삼을 정도다.
이렇게 요긴한 콘텐츠 가운데 기상정보는 엉뚱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 딱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들은 아침에 잠을 깨자마자 미세먼지가 주요 관심사인데, 그때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좋음’ ‘보통’ ‘나쁨’이 뜬다.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미세먼지가 좋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미세먼지가 발암물질로 지정될 만큼 부정적 의미로 굳어져 있는 상황을 고려치 않은 결과다.
사실 미세먼지 자체는 중립적인 물질이다. 알갱이가 가늘다는 뜻으로 ‘fine dust’를 쓰고 단위도 농도(concentration level)를 쓰니 높고 낮음(high & low)이 맞다. 그런데도 이를 좋고 나쁨이라는 가치의 문제로 구분하니 의미 전달에 장애가 생긴다. 매연이나 공해를 측정하면서 좋다고 표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괄호 안에 병기하는 미세먼지의 크기(㎍/㎥)는 더욱 해독하기 어렵다. 시민의 편리를 고려한다면 미세먼지의 심하고 약한 정도를 알려주는 것이 낫다. 강수확률을 지역별·시간별로 나타내듯 미세먼지 농도를 지수화하는 방안도 있겠다.
공공영역에서 유사한 혼선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음주량 측정 단위다. 유명 인사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혈중알코올농도(BAC)를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요즘 기준을 보면 0.03이 면허정지 대상이라고 하는데, 이 숫자는 아무런 경각심을 던져주지 못한다. 보통 사람의 셈법은 10 혹은 100 단위에 맞추어져 있고, 소수점 이하는 미미한 수준 혹은 티끌만 한 경량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이기 때문이다.
0.03이라는 측정치가 의학적으로는 정확할지 몰라도 사회적인 도량형의 단위로 사용하려면 100% 기준으로 환산해 주는 게 낫다. 알코올농도 0.1 이상을 나타내는 ‘만취 운전’도 술에 취한 정도를 표시하는 용어로는 적절치 않다. 일반적으로 ‘만취’는 사물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를 뜻하는데, 도로교통법에서는 소주 3잔 마신 상태를 만취로 분류한다. 사회적 언어와 규범적 언어 사이에 발생하는 괴리다. 여기에도 100% 기준을 적용해 ‘주취도 90%에서 운전’이라고 환산해 표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대인은 미디어 활용 능력이 뛰어나면서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다른 층위를 가진 언어끼리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과학의 결과를 생활에 적용할 때는 용어 선택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과학이 지성의 단계로 진입하는 데 인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과학자나 행정가 사이에 진시황의 인문적 마인드가 있다면 ‘미세먼지 좋음’이나 ‘0.1 만취운전’처럼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표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국민만 바라본다는 민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손수호 (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청사초롱-손수호] 미세먼지가 좋다고?
입력 2018-02-27 1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