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본격적인 북한 설득에 나서고 있다. 문 대통령은 25일 김영철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비공개로 만난 자리에서 직접 한반도 비핵화 방법론을 제안했다.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 우리 당국자들도 26일 워커힐호텔에서 북·미 대화에 참여시키기 위한 조건들을 놓고 김영철 등 북한 대표단과 릴레이 회담을 벌였다.
본격적인 북·미 대화 및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 조건들을 둘러싼 협상이 시작된 셈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6일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를 중재하는 입장에서 양쪽을 설득해 대화 여건을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미국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단계별로 설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핵 폐기 절차만 강조한 게 아니라 북한이 미국과 대화 명분을 얻을 수 있는 구상을 설명했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현 단계에서 미국과 대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을 언급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했다. 미국도 지난 24일 대북 해상차단을 골자로 하는 초강력 독자제재를 시행하면서 북·미 간 갈등이 극심해졌다.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원론적 비핵화 프로세스만을 고집하기보다는 탄력적 대응의 필요성을 북한에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어떤 방법론을 제안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과 연계해 북한을 설득했을 개연성도 있다. 여권 관계자는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과 신경제지도 로드맵을 북한에 설명하고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경우 받게 되는 경제적 효과를 설명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명시적인 핵동결·핵폐기 선언 대신 추가 미사일 도발 중단 등 우회로를 강조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지금은 북핵 문제 해법을 위한 첫 단추를 꿰어야 하는 시기”라며 “정교하게 작업하고 있다. 구체적인 현안까진 깊이 논의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정의용 실장은 김영철과 워커힐호텔에서 오찬도 함께했다. 정 실장과 김영철은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북·미 직접 대화가 진전되지 않을 경우 다자협상 틀의 복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다만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6자회담 재개 논의는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오찬 회동에는 정 실장과 남관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오찬 후에는 통일부와 국정원 차원의 실무 협의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文 대통령, ‘北·美대화 위한 단계별 조치’ 北에 제시
입력 2018-02-26 2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