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美가 말하는 ‘대화’ 미묘한 차이 있다

입력 2018-02-27 05: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다이닝룸에서 열린 전미 주지사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백악관은 이날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북한의 메시지가 비핵화로 가는 첫걸음일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AP뉴시스

美의 ‘talk’는 가벼운 접촉… 비핵화 논의는 ‘dialogue’ 사용
北, 체제보장이 궁극적 목표… 南, 北·美 물꼬 틔우기 주력


한국과 미국, 북한이 말하는 ‘북·미 대화’엔 분명하면서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미국은 비핵화를 목표로 한 대화를, 북한은 체제 보장을 위한 대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서로 유리한 위치에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다. 한국은 북·미 사이를 중재해 북·미 접촉의 물꼬를 틔우기 위한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그동안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에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가장 파격적인 대화 제안은 지난해 12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발언이었다. 틸러슨 장관은 당시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 만나서 날씨 얘기라도 하자”고 말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대화의 의미를 확대해석한 것에서 비롯된 오해의 측면도 있다. 미국은 비핵화 프로세스를 정식으로 논의하는 대화엔 ‘dialogue’를, 의제 없이 가볍게 만나 나누는 대화엔 ‘talk’란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틸러슨 장관은 당시 talk란 표현을 썼다.

미국은 이른바 ‘탐색적 대화’와 ‘비핵화 대화’ ‘예비적 대화’를 구분하고 있다. 도식적으로 풀이하면 비핵화 대화가 가장 난도 높은 대화이며, 서로의 의중을 확인하기 위한 탐색적 대화, 탐색적 대화를 하기 위한 접촉, 즉 예비적 대화가 있는 셈이다. 현 단계는 북·미가 서로 탐색적 대화를 하기 위한 예비적 대화를 고려하는 단계다. 북측이 밝힌 ‘대화 용의’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 대화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북한은 미국이 핵 포기를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기 전에 대북 적대시 정책부터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핵 폐기를 위한 대화가 아닌 체제 보장을 위한 대화를 요구한 것이다.

외교 소식통은 26일 “북한은 대화 용의를 밝히는 것으로 북·미 대화에 반 발짝 정도 나왔다. 나머지 발을 마저 떼야 미국이 전향적 변화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북한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 문제와 관련한 대화를 하겠다’고 직접 밝히는 것이 그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보다 확실한 신호는 ‘미사일 모라토리엄’(Moratorium·활동 중단)이다. 북한이 미 본토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인데, 현 단계에서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 당국자는 “북·미 대화가 시작되면 그것이 탐색적 대화가 될지, 본격적인 비핵화 대화가 될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며 “양측이 진지하게 대화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비핵화 대화로 바로 들어갈 수 있고, 애매한 태도를 고수하면 탐색적 대화에서 끝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미 간 신뢰가 바닥인 지금으로선 탐색적 대화든 접촉이든 신뢰를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