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성지 이스라엘은 예수의 발자취를 돌아보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구원의 메시아로 이 땅에 온 예수의 공생애와 수많은 이적들, 죽음과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자 인류가 이어가야 할 유산이다. 국민일보와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는 설립 30주년을 맞아 지난 12일부터 17일까지 고고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이스라엘 곳곳에 남아 있는 예수의 역사적 흔적을 찾았다. 3회에 걸쳐 조명한다.
목자들, 성탄 소식을 듣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8㎞쯤 떨어진 베들레헴. 해발 700m 고지대에 위치한 이 작은 마을은 시편 기자가 ‘여호와의 처소 곧 야곱의 전능자의 성막’(시 132:5)이 있는 곳이라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했던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함으로써 예언은 성취됐다.
지난 17일 순례단을 태운 버스가 멈춘 곳은 베들레헴 동쪽으로 2㎞ 떨어진 한 언덕이었다. 언덕 정상에 오르자 건너편 언덕에 베들레헴 마을 전경이 펼쳐졌다. 언덕배기 한쪽에서 순례객들의 찬양소리가 들렸다.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집채만 한 바위 아래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만한 구멍이 있었다. 안내자 김형욱(가명) 선교사는 “오래전 들판에서 양떼를 모는 목자들이 사용하던 자연 동굴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려준 천사의 음성을 들은 곳으로 전해진다”고 소개했다.
동굴 안은 2000년 세월을 오롯이 품고 있었다. 한낮에도 촛불이나 조명을 켜지 않으면 칠흑같이 어둡다. 벽면과 달리 유독 새까만 천장이 눈에 띄었다. 김 선교사는 “당시 목자들은 들판에서 양을 풀어 놓고 기르다가 밤이 되면 동굴에 들어와 머물렀는데 추위에 대비해 항상 불을 피웠다”며 “그때 검은 연기가 남긴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야생 동물로부터 양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던 목자들은 천사로부터 예수 탄생 소식을 듣고 언덕을 뛰어 내려갔을 것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굴 밖에서 언덕 맞은편을 가리켰다.
“저기 베들레헴 남쪽 부근이 예수님께서 탄생한 장소로 알려진 곳입니다.”
메시아 탄생의 역사를 마주하다
베들레헴 시내 남쪽으로 8㎞ 떨어진 예수탄생교회.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예수가 태어난 장소로 알려진 이곳을 AD 326년 방문해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세웠던 아도니스 신전을 허물고 세운 교회다.
이곳을 찾는 대다수의 순례객은 교회로 들어가기 위해 고개를 숙여야 한다. 입구는 단 하나. 높이 120㎝ 폭 80㎝의 작은 돌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겸손의 문’ ‘작은 문’으로 불리는 이유다.
이곳 순례의 하이라이트는 예수탄생 지점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계단을 따라 제단 밑으로 내려가면 14개의 꼭짓점을 가진 은색 별 문양이 바닥에 박혀 있다. 예수가 태어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표시한 것이다. 순례객들은 차례로 예수 탄생을 묵상하며 참예했다.
고고학자 스티븐 판(홀리랜드대 총장) 박사는 국민일보와 가진 별도 인터뷰에서 “메시아로서의 예수 탄생은 유대인이자 로마의 역사가였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저서 ‘유대고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요세푸스는 1세기 당시에 목격한 것들을 90년대에 집필했다”며 “유대고대사 18권에는 ‘이 시대에 예수가 살았는데 그는 진리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선생이었다. 그는 메시아였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대 유대교와 헬레니즘에 권위 있는 학자들은 예수 부활 이후 그를 직접 경험했던 이들과 함께했던 요세푸스의 이 같은 기록에 대해 진실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게 기독교 변증학자들의 견해다.
앞서 기독교 변증가인 박명룡(청주 서문교회) 목사도 기독교 변증 세미나 등에서 “빌라도 통치 기간에 예수는 십자가형을 받았고, 그 후 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다는 데 있어서도 변증가들 간에 명확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소강석 목사는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를 버리고 인간의 육신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어느 종교의 신도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역사”라며 “이는 신비 중의 신비요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사렛, 잊혀가던 이름을 찾다
나사렛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130㎞쯤 떨어져 있었다. 예수가 30세 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알려진 작은 마을이다. 이스라엘 평원이 멀리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이곳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고대마을의 흔적이 자취를 감추면서 성경 속에서만 등장하던 지명이었다.
고고학자들의 발굴이 이스라엘 전역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사이 농지에서 망루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았다.
1990년대 중반 약 6만8000㎡ 부지에 ‘나사렛 빌리지’란 이름으로 고대 나사렛 마을을 복원해 연간 9만5000여명이 찾는 순례지가 됐다.
마을 곳곳에는 돌을 깎아 만든 집, 당나귀를 이용하는 올리브 압착기, 각종 토기와 연장 등 1세기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과 도구들이 전시돼 있었다. 유적지 전문가 캐런 맥기(44)씨는 “고대 나사렛 마을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예수님의 유년기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나사렛 다른 지역들은 개발을 거듭했지만 이 부지는 발굴 전까지 지난 2000년 동안 건축물이 세워지지 않은 채 보존돼 왔다”며 “이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복원된 유대교 회당 안엔 양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 표본이 놓여 있었다. 당시 아이들에게 교과서처럼 쓰였을 구약 성경이 두루마리에 적힌 채 이 회당에서 읽혔을 것이란 설명이 뒤따랐다. 성경은 유년 시절 예수에 대해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고 기록하고 있다. 회당 한쪽에서 뛰어난 성경공부 실력을 뽐냈을 소년 예수의 모습이 그려졌다.
예루살렘=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찾아서] 신화가 아닌 역사… 인간으로 오신 예수의 땅을 가다
입력 2018-02-27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