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노원 등 일부 단지 주민 지방선거 앞두고 항의 계획… 서울시, 미성 등 이주 시기 늦춰 ‘규제 피한 강남권 단지도 고민’
리모델링은 반사 효과 얻어 용산 5개 단지 사업 박차… 재개발, 사업 오래 걸리지만 안전진단 규제 덜해 인기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강화의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안전진단을 받지 못해 부랴부랴 용역업체를 공고하는 단지들이 늘고 있고, 안전진단 미통과 단지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저항 움직임도 본격화되는 추세다.
서울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 상계동, 송파구 등의 부동산 시장은 이번 규제로 직격탄을 맞았다. 이들 지역에는 재건축 연한(30년)이 지났지만 안전진단을 진행하지 않은 단지가 많다. 목동 신시가지 11단지 전용 51㎡의 경우 7억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호가가 현재 6억원대로 내려갔다.
양천구와 노원구, 마포구 등 일부 단지 주민들은 비(非)강남 지역 중심의 ‘안전 없는 도시슬럼화 저지 범국민 대책본부’를 조직할 방침이다. 이들은 안전진단 기준 점수에 내진설계 여부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나 지방자치단체에 강력 항의한다는 계획이다. 26일에는 국회에서 국토교통부 관계자도 면담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전진단 규제를 피하기 위한 벼락치기 사업 추진도 횡행하고 있다. 강동구 신동아아파트와 송파구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등이 정밀 안전진단 용역업체 입찰 공고를 냈다. 영등포 광장·우창·신길우성2차아파트와 강동구 삼익그린맨션2차 등도 안전진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국토부가 정책 시행을 앞당기면서 다음 달 10일까지 관련 절차를 밟지 못할 경우 강화된 기준 적용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반면 리모델링과 재개발이 기대되는 단지는 대체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수도권에서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아파트는 40개 단지, 2만5974가구에 달한다. 리모델링은 사업성 측면에선 재건축에 크게 뒤지지만 빠른 사업 진행과 조합원 지위양도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반사 효과를 얻고 있다. 용산구 한가람·이촌코오롱·한강대우·이촌우성 등 5개 단지의 통합 리모델링을 시작으로 강남구 대치2단지 등이 리모델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재개발 사업도 안전진단 등 규제가 덜해 인기다. 다만 주체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 사업 절차가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결국 이번 규제로 재건축 안전진단을 마친 강남권 유망 재건축 단지와 신규 입주 단지 등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쏠림이 더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의 잇따른 재건축 규제는 일단 효과를 거두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서울 재건축 아파트값은 1주일 전에 비해 0.15% 오르는 데 그쳐 직전 상승폭(0.78%)보다 크게 줄었다. 다만 장기적인 집값 안정은 요원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크다.
시장은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 추진된 재건축 규제가 결국 부동산 광풍을 불러와 집값 상승을 막는 데 실패한 전례에 주목하고 있다. 노무현정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항목을 세분화하는 등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당시 규제 폭탄을 맞은 은마아파트는 집값이 2003년 7억원에서 2004년 5억원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006년 다시 11억원으로 오르는 등 규제의 부작용이 발생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안전진단 기준이 강화되면 5년 후부터 입주물량이 줄어 장기적인 가격 유지는 어려울 것”이라 내다봤다.
이와 함께 서울시가 이주 시기 조정 카드를 빼들면서 안전진단 강화 규제를 피한 강남권 단지들도 고민이 깊어지는 형국이다.
서울시는 26일 주거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송파구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1350가구)와 진주아파트(1507가구)의 관리처분인가 시기를 각각 7월과 10월 이후로 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송파구청은 두 아파트에 대해 오는 4∼9월 중 이주를 마무리한다는 내용으로 심의를 신청했지만 서울시가 이를 늦춘 것이다. 이들 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이주 결정이 나면 본격적인 사업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일정이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 측은 “가구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미성·크로바 아파트는 관내 정비구역(거여 2구역) 이주가 마무리된 이후, 진주아파트는 인근 정비구역(개포 1단지) 이주기간이 종료된 이후에 이주할 것을 권고했다”고 설명했다. 두 단지가 동시 이주하게 되면 약 3000가구가 움직이기 때문에 재건축 물량을 중심으로 한 주택시장이 과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업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단지를 중심으로 반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세환 김유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이슈분석] ‘안전진단 저항’ 본격화… 계속되는 재건축 규제 후폭풍
입력 2018-02-27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