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 풀렸는데… 北·美, 이번엔 테이블 앉나

입력 2018-02-27 05:0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다이닝룸에서 열린 전미 주지사 만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백악관은 이날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북한의 메시지가 비핵화로 가는 첫걸음일지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AP뉴시스

美, 비핵화 전제 없는 대화 의미 없다는 게 기본 입장… 대화의 조건으로 제재 완화 않겠다는 방침도
北, 대화 의지 밝혔지만 비핵화에 대한 언급 없어… 핵무기 보유 인정받고 군축협상 벌이겠다는 전략


북·미 대화가 성사될 가능성이 커졌다. 북한도 미국도 서로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비핵화 논의를 위한 본격 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탐색적 대화가 열릴 개연성은 높아졌다. 다만 실제 북·미가 한 테이블에 앉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지난 10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예정된 만남도 2시간 전에 불발된 것에서 보듯 북·미 관계는 예측이 쉽지 않다. 자칫 탐색만 하다 시간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대화의 조건이다. 펜스 부통령은 귀국길에 가진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예비적 대화’가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는 대화는 의미가 없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이는 백악관이 25일(현지시간) 내놓은 성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백악관은 새라 허커비 샌더스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미국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북한의 메시지가 비핵화로 가는 첫걸음일지 지켜보겠다”며 “북한과의 어떤 대화도 비핵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또 “북한이 비핵화를 선택할 경우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할 때까지 최대의 압박 작전은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말해 대화의 조건으로 제재 완화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방남 하루 전인 지난 24일 대규모 추가 제재 발표를 통해 북한을 최대한 압박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도 미국에 호락호락 끌려가지 않으려고 할 게 분명하다. 김영철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미 대화 의지를 밝혔지만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북한은 그동안 여러 차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고 말해 왔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에서 핵무기 보유를 인정받고 군축협상을 벌이겠다는 전략이다.

북·미 양측의 시각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실제 대화가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낙관하기 쉽지 않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오히려 북·미 대화를 중재하려고 노력하는 문재인정부와 이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트럼프정부 사이에 갈등이 깊어질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세종연구소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시각이 달라지지 않는 한 한·미 관계가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NYT는 다음 달 끝나는 평창 동계패럴림픽 이후로 연기된 한·미 연합훈련 실시 문제가 한·미 관계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논의 과정에서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을 경우 한국이 대북 정책과 관련해 독자 노선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미국 일각에서도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구축된 남북 간 연락채널을 백악관이 인정하고, 이 채널을 북한 비핵화에 도움이 되도록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NYT는 전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