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축구에 대한 자신감’으로, 팀을 바꾸어도 조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2002년이 되면 우리는 서로 적수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도 멋진 경험이 될 것입니다.”(홍명보가 나카타에게)
“당신은 항상 운동장 가운데 무게 있게 서 있으며 팀 전체를 이끈다는 느낌이 들었지요. 가시와에서나 한국 대표팀에서나 팀의 마음의 지주는 당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나카타가 홍명보에게)
2002년 한일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 어느 날, 우연히 ‘홍명보 나카타 TOGETHER’란 책을 봤다. 홍명보(49) 대한축구협회 전무가 1990년대 말 일본 프로축구팀으로 이적할 때 팀 동료였던 나카타 히데토시(41)와 2001년에 주고받은 편지 내용을 다뤘다. 일본무대에 몸담은 홍명보와 이탈리아 리그로 옮긴 나카타의 서신 교류는 그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월드컵 직전에 발간된 책 덕분인지, 당시 양국의 호성적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2002년 6월이 양국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로 기억한다. 일본 젊은이들이 도쿄시내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외치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이 책을 다시 봤는데 뭉클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한·일 관계의 온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양국의 갈등은 재연됐다. 홍명보와 나카타의 훈훈한 우정은 잊혀졌다.
2009∼2010년 인터넷부서에 있을 때였다. 여자 연예인 및 유명인사 뉴스 외에 네티즌의 시선을 잡는 아이템 중 하나가 일본 관련 소식임을 알았다. 특히 한·일 스포츠 스타 비교는 기사 조회수 대박의 보증수표였다. 당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간 대결은 최대 화제였다. 한·일 양국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비치기도 했다. 김연아에 대한 일본 매체·네티즌들의 반응, 아사다가 한 사소한 말 등이 시시콜콜히 전해졌다. 일본 측의 부정적 멘트, 김연아의 우월감을 보여주는 내용 등 클릭을 유도하기 쉬운 기사들이 전진 배치됐다. 하지만 이 둘은 개인적으로는 꽤 친했다는 후문이다. 경쟁 속에서도 서로에 대한 배려가 많았다. 다만 사적 친밀감이 부각되기에는 세계무대를 주름잡던 둘의 경쟁에 대한 주변의 관심이 지나치게 높았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의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의 관계는 김연아와 아사다를 보는 것 같았다. 팬들은 이상화의 실력이 다소 하락세이긴 해도 올림픽 2연패의 저력을 통해 홈에서 세계랭킹 1위 고다이라를 잡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아쉬운 패배. 그런데 경기 후 빙판 위에서 벌어진 모습에 허탈함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고다이라가 낙담한 이상화를 안으며 한국말로 “잘했어”라고 했다. 이상화는 “너를 존경한다”고 답했다. 이후 감춰진 둘의 우정을 보여주는 미담이 쏟아졌다. ‘앙숙’ ‘숙적’이라는 양국 관계에 비춰보면 이례적일 정도였다. 자극·선정적 제목이 기사에 자리 잡을 여지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한·일 스포츠 영웅들의 우정 소식은 8년 간격으로 나오고 있다. 월드컵 맞대결이 없었고 책에서만 알려진 홍명보-나카타의 우정은 임팩트가 덜했다. 김연아와 아사다의 우정은 미완이었다. 반면 이상화와 고다이라의 관계는 생방송으로 전달된 만큼 많은 이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올림픽 최고 화제 종목이 된 여자 컬링에서도 4강전에 맞붙은 한·일 스킵(주장) 김은정과 후지사와 사쓰키는 서로의 기량을 존중하고 치켜세우면서 찬사를 받았다.
일본 선수들에 대한 착한 댓글이 요즘처럼 많기는 처음 아닌가 싶다. 이를 계기로 스포츠에서만이라도 한·일 사이에 훈풍이 계속 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다이라는 이상화에게 “네가 2022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하면 나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4년 후 두 노장이 결과에 상관없이 한 조에서 뛰고 현역에서의 마지막 포옹을 하는 모습을 보고픈 이는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스포츠는 이래서 아름답다.
고세욱 스포츠레저부장 swkoh@kmib.co.kr
[돋을새김-고세욱] 한·일 스포츠 스타의 우정
입력 2018-02-26 17: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