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전략을 총괄하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25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북·미 대화에 명시적으로 긍정적인 뜻을 밝혔다.
다만 김영철은 비핵화에 대한 입장 표명 없이 원론적 수준의 대화를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김영철의 발언이 핵보유국 지위를 바탕으로 한 북·미 대화를 언급한 것이라면 북한의 기존 입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행동을 보여야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우리 정부 역시 비핵화를 위한 논의가 없는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는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문 대통령은 이날 강원도 평창 모처에서 북한 대표단을 접견하고 남북 관계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한 북·미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영철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전달하고, 북·미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영철 발언은 남북 관계를 개선해 북·미 대화를 견인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구상에 일부 동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미 대화에 어떤 형식으로 접근할 것인지, 비핵화 협상에도 응할 뜻이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미는 2주 전 만나기로 합의했었고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면담 직전까지 갔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탐색적 대화에 대한 원론적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비핵화 문제 등 깊은 논의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북·미 대화를 중재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지만, 비핵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점이 드러난 셈이다.
이날 오전 방남한 김영철은 평창에서 문 대통령 면담, 조명균 통일부 장관 주재 만찬, 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참석한 뒤 자정쯤 숙소인 서울 광진구 워커힐호텔로 돌아갔다. 북측은 오후 6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이어진 만찬에 김영철, 이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 등 5명이 참석했다.
김영철은 양복 위에 검은색 모직코트를 덧입었다. 김영철은 2015년 말까지 상장(별 3개) 또는 대장(별 4개) 계급장을 단 군복 차림으로 등장했으나 2016년 초 통일전선부장 직책을 맡은 이후에는 주로 인민복을 입었다.
앞서 김영철 일행은 통일대교 대신 군사용 교량인 전진교를 타고 임진강을 건넜다. 한국당 의원들이 김영철을 육탄 저지하겠다며 통일대교 남단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전진교는 민간인통제구역 안에 설치된 교량으로, 육군 1사단 전진부대가 관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 군부 인사인 김영철에게 우리 군사 시설물을 노출했다는 비판이 야권에서 제기됐다. 군 관계자는 “전진교는 당초 군사용으로 세워진 것은 맞는다”면서도 “지금은 농사를 짓는 주민들도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김영철이가 개구멍으로 들어온 것 같다”며 “우리 당원과 시민들이 김영철을 그리 쉽게 가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조성은 기자 eyes@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北·美 대화’ 표명한 北… 비핵화 언급은 없었다
입력 2018-02-25 2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