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보다 과정 중시 세태 반영… 파벌·기득권·불공정에 비판적
국가주의 탈피 인간 존중 정착… 굿즈 문화 영향 수호랑 등 인기
선수-팬 직접 소통 모습도 눈길… 경쟁 외국 선수에도 호감 표시
17일간의 평창 동계올림픽에는 달라진 한국사회의 단면이 투영됐다. 메달을 따도 금(金)색이 아니면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던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에서 “행복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적폐청산을 겪으며 피어오른 공정 감수성도 올림픽을 관통했다. 국민은 결과보다 땀과 노력이 묻어난 과정, 선수들이 써내려온 드라마에 더 환호했다. 국가 대 국가의 경쟁 시점으로만 바라봤던 올림픽 경기를 축제로 즐기게 된 모습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었다.
결과만큼 중요한 선수의 땀과 눈물
지난 18일 이상화는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 종목에서 은메달을 땄다.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만큼 과거였다면 ‘아쉬운 은메달’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졌지만 잘 싸웠다”는 반응이 대다수였을 경기였다. 이번엔 달랐다. 국민들은 메달 색깔보다 이상화 선수가 땀 흘리며 노력했던 시간을 높게 평가했다.
선수들도 최선 앞에 당당했다. 쇼트트랙 ‘골든데이’로 기대를 모았던 지난 22일 한국은 금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대부분 선수들은 자신의 SNS에 아쉬움보다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여자 1000m 경기에서 넘어졌던 심석희는 인스타그램에 “팬들에게 너무 감사하고 정말 큰 힘이 됐다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과정은 힘들었지만 오늘의 저는 너무 행복했다”고 남겼다.
그 배경에는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세태가 있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25일 “과거에는 누가 더 좋은 곳에 가고 돈을 많이 버느냐를 중시하는 결과 중심적 사회였다면 지금은 그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며 “최근 채용비리나 인사청탁 문제를 보고 2030세대가 분노했던 건 차근차근 준비하는 과정의 중요성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국가가 개인보다 중요했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올림픽에서 과거에 비해 국가주의적인 냄새가 많이 옅어졌다”며 “그 어떤 때보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한국사회에 정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올림픽 관통한 공정 감수성
공정 감수성도 두드러졌다. 개막을 앞두고 불거진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논란이 대표적이다.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구성된 단일팀에 국민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공정성 논란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 경기에서 또 한 번 불거졌다. 지난 19일 열린 준준결승 경기에서 김보름 박지우가 노선영과 떨어져 따로 질주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왕따’ 의혹이 일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김보름 박지우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과 빙상연맹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고 60만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임운택 교수는 최근의 적폐청산과 이번 현상을 연결해서 봤다. 임 교수는 “파벌 역시 어떤 기득권을 의미하는데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여기에 강한 거부감이 있다”고 짚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그동안 사회에 만연했던 불공정 요소에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며 “(이러한 현상이) 스포츠계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화살이 개인에게만 돌아갔다는 우려도 있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선수들은 시스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선수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즐김과 소통의 평창올림픽
올림픽을 즐기는 방식도 색달랐다. ‘굿즈’ 문화가 올림픽에 녹아들면서 평창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 관련 상품이 큰 인기를 얻었다. 굿즈는 스타나 캐릭터와 관련된 물품을 일컫는다. 반면 2002년 월드컵 때는 마스코트였던 아토 니크 캐즈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신광영 교수는 “사람들의 관심과 취미가 다양화된 데다 SNS를 통해 빠른 정보 공유가 가능해진 결과”라고 말했다.
단체채팅방에서 선수와 직접 소통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쇼트트랙 최민정 김아랑과 스피드스케이팅 김민석 정재원은 자신을 주제로 한 채팅방에 접속해 인증샷을 남기고 팬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한국 선수가 메달권과 거리가 있는 종목을 챙겨보는 모습도 포착됐다. 국내에서 올림픽이 열리며 경기에 대한 접근성이 크게 확대된 결과다. 경쟁상대로만 생각했던 외국 선수를 호감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서 금메달을 딴 일본의 고다이라 나오나 쇼트트랙 경기에 출전한 헝가리의 류 샤오린 산도르는 운동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외모로 인기를 얻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메달 못 따면 어때?”… 성적보다 즐기는 축제로
입력 2018-02-2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