샅바싸움 北·美… ‘탐색적 대화’ 성사 여부 촉각

입력 2018-02-26 05:00
북한 고위급 대표단에 포함된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 부국장이 25일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서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은 앨리슨 후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최 부국장과 후커 보좌관은 북·미 대화 창구로 알려져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뉴시스

실무진 보낸 것은 긍정 신호, 서로 급이 맞아 행보 주목… 탐색하는 수준의 접촉 가능성
北, 최강일 보낸 의도 불분명… 대화 의지 보이기 술수일 수도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참석차 방한한 미국과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엔 연결고리가 있다. 미 백악관에서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과 북한의 대미 외교 창구인 최강일 외무성 부국장이다. 양측이 핵 문제와 북·미 관계를 다루는 실무진을 대표단으로 보낸 것은 물밑 접촉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강일은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이끄는 고위급 대표단의 지원인력으로 25일 방남했다. 그는 과거 북핵 6자회담 실무그룹에 참여하면서 미국과 직접 대화한 경험이 많은 인물이다. 지난해 9월 스위스에서 열린 체르마트 안보회의에 참석해 미 국무부 전직 관료와 비공식 접촉도 했다. 최강일과 함께 온 지원인력 중엔 통역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후커 보좌관은 지난 23일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선임고문이 이끄는 대표단 수행원으로 입국했다. 그는 2014년 11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해 방북, 김영철과 협상했을 때 동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강일과 후커는 일단 급이 맞는다. 따라서 비공개 접촉 가능성은 살아 있다”며 “다만 미국은 북한이 먼저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실제 접촉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최강일과 후커 간 접촉이 성사되더라도 두 사람의 급을 고려하면 할 수 있는 얘기는 ‘탐색적 대화를 열어보자’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로 치면 후커는 청와대 행정관, 최강일은 외교부 심의관 격이다.

미 대표단은 북·미 접촉에 선을 그은 상태다. 대표단으로 방한 중인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4일 강원도 평창의 USA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평창올림픽 폐회식에서 북한 사람들과 접촉할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우리는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약간의 움직임을 보여주길 기대한다”며 “그것은 생산적인 대화의 출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임스 리시 미 상원 의원도 기자회견장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많은 옵션이 제출돼 있다.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거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취임 후 10번째 대북 독자 제재를 발표하면서 ‘2단계’를 언급한 것 역시 북한을 비핵화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막바지 초강도 압박으로 해석된다.

북한 대표단이 이날 오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북·미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실제 북·미 접촉까지 염두에 두고 최강일을 내려 보낸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미국과 국제사회에 ‘우리도 대화 의지가 있다’는 정도의 메시지만 전달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이방카 트럼프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을 비롯한 미국 대표단은 26일 오전 출국할 예정이다. 일정상 북·미 접촉이 쉽지 않은 여건이다.

전직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펜스 미 부통령 회동이 불발된 이후 북한이 대화를 걷어찼다는 비판이 일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최강일을 끼워 넣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당 외곽 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이날 오전까지도 “미국에 대화를 구걸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