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경원] 스포츠 국가주의·익명의 여론이 남긴 상처

입력 2018-02-25 21:31

‘겨울 축제’ 평창올림픽이 끝났다. 선수와 관중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환호가 사라지고 적막해진 경기장에 여전히 남은 것들이 있다. ‘스포츠 국가주의’의 그늘, 쉽게 잔인해지고 정당화되는 ‘익명의 여론’ 따위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은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금메달을 2개 딴 여자 쇼트트랙의 최민정은 “4관왕 기대에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김보름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확정한 뒤 “생각나는 것이 ‘죄송합니다’는 말밖에 없다”고 했다. 김보름은 울면서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했다.

일부 선수를 향해 여론이 들끓은 이유는 메달 색깔이 아니라 스포츠 정신이었다. 다만 이런 비난이 결국 국가와 집단의 이름으로 이뤄진다는 점은 짚어볼 대목이다. 60만명이 동의한 ‘김보름 박지우의 국가대표 박탈’ 청원에는 “개인의 영달에 눈이 멀었다” “인성이 결여된 자들이 대표 선수라는 것은 국가 망신”이라는 말들이 있다.

선수의 인성을 물고 늘어지는 집단 여론은 정작 스스로의 폭력성을 반성하지 않는다. 쇼트트랙에서 동메달을 딴 선수는 레이스 도중 후배의 앞길을 막았다며 무수한 비난을 감당해야 했다. 그가 거둔 성취가 금메달이었다면 찬사로 바뀌었을 ‘악플’이었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남북 단일팀 구성 결정에 따라 선수단에서 제외되며 아쉬움을 토로한 선수는 “어차피 랭킹 22위면서 경솔하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어차피 메달권이 아니라는 말은 정치권에서부터 나왔다.

관중석은 선수들에게 태극마크의 무게를 절감하라고 가르친다. 어떤 선수의 플레이에서는 최선을 느끼지 못했다며, 또 다른 선수의 반성에서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며 화를 낸다. 메달의 색깔 따위는 신경 쓸 필요가 없고, 메달보다 값진 교훈이 있다고 짐짓 타이르기도 한다. 실제로 메달에 인생을 걸었던 선수들은 평생 메달 색깔을 말한다.

관중석은 집단 환호나 손가락질이 세금이란 이름으로 너무 빨리 정당화되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편안히 관람한 단 몇 분, 단 몇 초의 승부는 사실 선수들이 수년간 쌓은 정성과 고난의 결과물이다. “죽도록 노력할 때는 알아주지 않았다”며 환호에 의아해하던 선수를 만난 적도 있다.

많은 선수들은 최근 4년간 분노만큼 사랑도 느끼지 못했던 이들이다. 대개는 올림픽 이후 다시 무관심 속으로 돌아가 운동을 할 것이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남자 쇼트트랙 2관왕을 했던 이정수는 경빙장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이경원 스포츠레저부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