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올림픽이 마무리됐다. 온라인 이슈로만 보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친동생 김여정이 문을 열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큰딸 이방카와 북한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문을 닫았다. 그 사이 ‘안경 선배’로 불리는 여자 컬링 대표팀 주장 김은정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당초 우려도 있었지만 흥행에도 성공을 거뒀다. 이희범 평창올림픽조직위원장이 24일 밝힌 바에 따르면 경기장 티켓은 목표 대비 100.2% 발매됐고, 관중도 114만2000명(23일 기준)에 달했다.
국민들이 올림픽에 열광하는 동안 나라 한편에서는 지난달 말 서지현 검사가 촉발한 ‘미투(#MeToo)’ 열풍이 들불처럼 번졌다. 고은 시인의 상습적인 성폭력이 재조명됐고,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상상도 하기 힘든 만행이 고발됐다. 예능에서 자상한 아버지 모습을 보여줬던 배우 조민기는 연극 영화를 전공하는 제자들에게 참으로 몹쓸 짓을 지속적으로 저질러 왔었다. 소나무 사진으로 유명한 세계적 사진작가 배병우는 교수 재직 당시 제자들을 성추행하고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투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다. 감초 코믹 연기로 호감형 배우였던 오달수는 연희단거리패에 몸담았을 당시 여자 단원들을 성추행했다는 주장이 이윤택 관련 기사에 댓글로 달렸다. 경기도 문화의전당 이사장까지 지낸 배우 조재현은 성추행 의혹에 “내가 죄인”이라며 모든 걸 내려놓겠다고 했다. 가톨릭 신자에 의해 7년 전 일어났던 한 신부의 성폭행 시도도 폭로되기에 이르렀다. 사회 각 분야에 만연한 성폭력 문화는 피해자들이 용기 있게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누르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많은 국민이 손가락으로 비판하고 지지하면서 미투 운동은 힘을 얻었다. 손가락이 세상을 바꾸며 적폐를 청산하고 있는 셈이다.
올림픽 기간 손가락의 활약이 오점으로 남은 일도 있었다. 이른바 손가락 애국이다. 쇼트트랙 여자 500m 경기에서 최민정이 캐나다 선수 킴 부탱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실격되자 한국 네티즌들은 킴 부탱 인스타그램을 비난 댓글로 폭격했다. 킴 부탱은 이런 댓글을 피해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급기야 경찰이 수사에 나섰고 일부가 적발됐다. 하지만 이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한다. 킴 부탱 측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내놓았다. “평화와 화합의 올림픽 정신을 살리는 차원에서 악성 댓글을 남긴 사람들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 악성 댓글을 단 당사자들에게 세계인을 하나로 모아 즐기는 특별한 축제인 올림픽을 통해 평화를 향해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꼭 전달하고 싶다.” 한국인으로서 고개를 들 수 없게 만든다.
김보름을 향한 손가락질은 곱씹을 만하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김보름은 막판 박지우와 함께 스퍼트를 올렸지만 노선영이 3초 이상 크게 뒤처지면서 동료애와 팀워크를 저버리는 행동으로 여겨졌다. 김보름은 인터뷰에서 준결승 진출이 무산된 원인이 노선영에게 있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노선영은 사회적 약자였고 그를 배려하기보다 오히려 왕따시키는 듯한 김보름의 행동에 국민은 화를 냈다.
김보름의 말과 행동이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딱 그만큼만 비난을 받아야지 정도를 넘어 마녀사냥이 돼선 안 된다. 비판이 지나치면 반성이 아닌 반발이 생긴다. 본인과 가족 입장에서 “무슨 죽을죄를 지었느냐”는 억울함이 먼저 들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말대로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딴 김보름은 “메달보다 값진 교훈”을 얻었고 많은 반성을 했을 것이다. 이제 김보름을 향했던 손가락질은 그 뒤에 숨어 있는 빙상연맹과 지도자들을 겨냥해야 한다. 이래저래 손가락의 힘과 역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올림픽이었다.
맹경환 온라인뉴스부 차장 khmaeng@kmib.co.kr
[뉴스룸에서-맹경환] 손가락의 명암
입력 2018-02-25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