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치는 지역적이다(All politics is local).” 1970∼80년대 미국 의회정치를 쥐락펴락했던 팁 오닐 전 하원의장이 남긴 말이다. 대의명분을 앞세우고 국익을 논하지만 정치인들 언행의 기저에는 개인적이고 지역적인 정치적 이해득실이 자리하고 있음을 함축적으로 담아낸 명언이다. 주류 경제학의 이론과 가설들은 대부분 경제행위자(homo economicus)가 사적인 경제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경제에 비해 정치는 애국, 도덕, 이념, 명예 등 비물질적 가치의 비중이 더 큰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사익보다 공익을 중요시한 정치인들도 많다. 하지만 정치행위자(homo politicus)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동인 역시 사적인 정치이익이라는 가정하에 정치행위를 분석해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예측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분석틀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대북군사행동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여러 번 흘러나왔다. 과연 트럼프는 군사작전을 감행할까. 필자는 가능성을 아주 낮게 보고 있다. 다른 이유를 다 떠나서 정치적 이해득실을 저울질했을 때 트럼프에게 군사작전 실행은 남는 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선제적 군사력 사용의 국내 정치적 명분은 확보돼 있다. 인권을 유린하는 잔혹한 독재정권이 미국에 직접 안보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 내 북한이 소형화된 핵탄두를 탑재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완성한다면 트럼프에게는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다. 사실상 ‘해상차단’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독자 제재를 도입하며 최대 압박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여차하면 전임 행정부에 책임을 전가해 정치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선제적 군사행동이 인적·재정적 비용을 최소화하며 신속히 성공할 수 있다면 국내 정치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러한 대북군사옵션은 없다. 군사행동은 아무리 제한적이라고 해도 확전될 가능성이 높고, 확전의 경우 미국이 치러야 할 비용은 트럼프가 국내정치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달을 것이다. 트럼프 핵심지지층은 기본적으로 해외 군사개입에 비판적인 고립주의 성향이다. 미국을 위협하는 불량국가에 대한 군사행동을 심정적으로 지지하지만, 막상 군사행동에 돌입해 국력을 소진하기 시작하면 바로 지지를 철회할 것이다.
러시아 스캔들 특검의 칼끝이 대선캠프의 핵심인사뿐 아니라 아들과 사위를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11월 치러질 중간선거의 승리는 트럼프에게 매우 절실하다. 2020년 대선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 선거에서 패한다면 본인의 정치적 몰락뿐 아니라 간첩법 위반으로 가족이 실형을 살 수도 있다. 섣부른 군사적 모험보다 무역분쟁에서 소소한 전리품을 챙겨와 핵심지지층을 다독이는 것이 선거에 더 도움이 된다. 장사꾼 셈법에 능한 그의 머릿속은 이런 계산으로 분주할 것이다.
트럼프의 군사옵션은 최대 압박의 일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북한의 패를 내려놓게 하기 위한 블러핑(bluffing)적 요소가 다분하다. 하지만 막상 포커를 쳐보면 블러핑인 줄 알지만 상대가 손에 쥔 히든카드가 위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싫든 좋든 우리는 미국과 한편에서 북한의 패를 내려놓게 하는 게임을 해야 한다. 귓속말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하는 팀워크는 필요하다. 하지만 다 보이는 데서 옆구리 찌르며 베팅 그만하라고, 판 좀 그만 키우라고 할 일은 아니다. ‘풀 베팅’하며 판을 키운 쪽은 김정은이고, 트럼프는 ‘콜’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김정은도 거의 ‘올인’한 상황에서 한번에 패를 다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김정은이 먼저 카드 한 장은 내려놓으며 “판 그만 키우고 이제 협상합시다” 할 수 있게 압박을 지속해야 한다. 군사작전 ‘감행’은 김정은이기 때문에 위험하지만, 군사작전 ‘옵션’은 트럼프이기 때문에 유효할 수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한반도포커스-김재천] 트럼프의 대북군사옵션 감상법
입력 2018-02-25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