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직원이 하루 1100대 생산
아산공장에 첫 도입된 비전로봇 쉴 새 없이 상하좌우 움직이며 차의 색상·표면상태 최종 점검
육안으론 안 보이는 것까지 체크, 로봇이 잡아내면 사람이 수정 ‘OK’ 검사서 주유 마치고 부릉∼
지난 22일 현대자동차 충남아산공장 내 도장 공장. 사람 팔 모양의 거대한 로봇들이 쉴 새 없이 상하좌우로 움직이며 현대차 그랜저의 색상과 표면 상태를 최종 검사하고 있었다. 지난해 현대차 국내공장 중 아산공장에 첫 도입된 '비전로봇(vision robot)'은 손끝에 직사각형 모양 형광판을 달고 차량 구석구석을 점검했다. 엑스레이(X-ray) 찍듯 검사가 끝나면 또 다른 비전로봇 2대가 기다린다. 빽빽한 형광등 아래에서 다시 한번 도장 상태를 점검한 뒤 문제가 있는 부분에 스탬프를 찍는다.
정현칠 아산공장장(상무)은 “0.4∼0.5㎜까지 작은 이물이 도장 표면에 묻었는지 다 잡아낸다. 이전에 작업자들이 3∼4점 정도를 찾아낸다며 비전로봇은 2∼3배 더 찾아낸다”며 “사람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까지 잡아내기 때문에 굉장히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도장라인 직원들이 로봇에게 다시 바통을 이어받았다. 로봇이 찍어준 부분을 수정하는 작업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13만여 대가 판매되며 ‘베스트셀링 카’가 된 그랜저는 이렇게 생산되고 있다.
찍고, 붙이고… 춤추는 로봇 팔
현대차 아산공장은 지난해 총 26만4150대를 생산했다. 그랜저와 중형차의 상징 쏘나타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144만8000㎡(약 43만8000평)의 부지에서 거대한 로봇과 직원 4200명이 주간연속 2교대로 하루 1100대를 생산해낸다. 1일 작업시간이 15시간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54초당 중·대형 세단 1대가 뚝딱 만들어지는 셈이다.
자동차 생산은 프레스, 차체, 도장, 의장 순으로 진행된다. 각 라인마다 로봇에 알맞은 작업, 사람에 적합한 작업이 다르기 때문에 자동화율도 14∼100%까지 차이가 난다.
프레스 공장에서는 원자재인 철강 코일을 자동차 디자인에 맞춰 찍어낸다. 포스코·현대제철 등에서 납품받은 철강을 거대한 ‘금형’이 철컥철컥 소리를 내면서 찍어내자 자동차 문이 되고, 덮개가 됐다. 신체 부위에 빗대자면 뼈마디 하나하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프레스 라인에는 여러 모양의 패널(내·외판)이 창고형 매장의 상품처럼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하루 반나절만에 6만개의 패널이 사용된다고 한다.
차체 공장은 로봇 312대가 철강 패널을 접합해 차체 뼈대를 만드는 곳이다. 특히 용접작업의 경우 100% 로봇이 전담한다. 로봇이 바닥과 측면 등 패널을 집어든 뒤 몇 차례 불꽃이 튀자 차체가 눈 깜짝할 새 완성됐다. 이후 레이저 검사를 통해 차체 주요 부위를 점검하면 차체 공정이 완료된다. 자동차의 척추와 뼈대가 만들어졌다.
칠하고 조립하고… 로봇-인간의 협업
도장은 차가운 금속인 자동차 뼈대에 화려한 색깔을 입히는 작업이다. 조립 완료된 차체를 세척하고 녹 방지 도료를 바르는 작업이 먼저다. 이후 바탕색을 입히고 광택을 낸다. 이어 최종 컬러가 결정된다.
긴 터널 모양의 작업장으로 차체가 천천히 지나가자 로봇이 따라 움직이면서 색을 입히고 광택을 냈다. 초벌 도장과 건조, 다시 도장과 건조를 거치면서 도자기에 색을 입히듯 조심스러운 과정이 되풀이된다.
도색까지 완료된 차체는 마지막 조립단계인 의장 공장으로 들어간다. 의장 공장에 들어간 차들은 보닛 부분에 일종의 ‘조립 설명서’가 붙여져 있다. 해당 차에 어떤 부품과 옵션이 들어가야 하는지 설명이 담겨 있다. 컨베이어 벨트 위로 차들이 서서히 움직이면 작업자는 설명서에 맞춰 부품을 하나하나 조립했다.
의장 작업에서도 로봇의 도움은 필요하다. 자동차 시트나 타이어, 배터리 등 무게가 무거운 부품은 로봇이 장착한다. 이성규 아산공장 총무팀 과장은 “예전에는 작업자가 일일이 조립해야 했던 계기판 등이 모듈화되면서 공정이 상당히 축소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이 여전히 제일 필요한 공정이므로 자동화율은 14%로 가장 낮다. 부품 조립이 끝나자 최종 단계인 ‘OK’ 검사에서 주유를 마친 차들이 처음으로 시동이 걸려 움직였다. 철판 덩어리가 로봇과 사람의 손을 거쳐 자동차로 처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차량 한 대당 생산시간을 줄여라
아산공장은 현대차 공장 중 ‘리딩 팩토리(leading factory)’라는 자부심이 크다. 올해 98.4%의 가동률을 목표로 24만3500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자동차 1대당 생산에 투입되는 시간’(HPV·Hour per Vehicle)은 지난해 18.5시간이었지만 올해는 18.1시간으로 단축할 계획이다. 아산공장의 HPV는 같은 현대차 국내 공장 평균(27.5시간)보다 월등히 높다. 정현칠 공장장은 “0.4시간(24분)을 낮추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며 “공정을 개선하고 공장 가동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아산공장은 체결보증시스템과 품질관리시스템을 통해 제작공정을 철저히 관리한다. 각 라인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전산으로 입력하고 이를 전부 수정한 뒤에야 출고가 가능하다. 작업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공장장의 사무실에도 모든 공정 현황이 모니터에 기록된다. 이 시스템에선 아산공장뿐 아니라 울산공장 등 국내 모든 공장의 공장 가동률, 생산대수 등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정 공장장은 “‘안전 최우선으로 최고의 품질 우수 공장 실현’이 아산공장의 목표”라며 “안전이 생산성 품질보다 우선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글로벌 최고 품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산=임성수 기자joylss@kmib.co.kr
그래픽=전진이, 안지나 기자
베스트셀링 카 뒤엔… 인간·로봇 협업 있었다
입력 2018-02-2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