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컬링 ‘24년의 준비’ 마침내 빛을 보다

입력 2018-02-24 00:02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 스킵 김은정(오른쪽 앉은 선수)이 23일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일본과 가진 평창 동계올림픽 준결승전에서 스톤의 방향을 보며 “영미야”를 외치고 있다. 그 뒤에서 일본의 스킵 후지사와 사츠키(오른쪽)와 서드 요시다 지나미가 지켜보고 있다. 강릉=윤성호 기자

매직 샷+단단한 팀워크
끊임없는 복기 훈련의 결실
무관심과 푸대접 설움 날려


한국 여자 컬링팀이 일궈낸 ‘올림픽 결승 진출’이라는 기적은 자로 잰 듯한 ‘매직 샷’과 단단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다. ‘불모지’ 한국에서 이름과 경기규칙조차 낯선 컬링은 비인기종목 가운데 최고의 비인기종목이었다. 한때 요강을 굴리고, 얼음판을 빗자루로 쓰는 이상한 놀이라는 놀림을 받았다. 이런 설움과 무관심을 ‘24년간의 준비와 훈련’으로 이겨냈다.

경기 때마다 관중의 탄성을 자아내는 ‘매직 샷’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여자 컬링팀은 김민정 감독의 지휘 아래 끊임없는 ‘복기 훈련’으로 실력을 다졌다. 경기가 밤늦게 끝나는 날에도 어김없이 무엇이 약점인지, 어디서 잘못했는지를 연구하고 보완해왔다. 선수들은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스스로 휴대전화를 모아 김 감독에게 주기까지 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질까봐 외부와의 연락을 끊은 것이다.

여자 컬링팀은 예선 9경기에서 방어보다는 공격적인 전략을 펼쳐 세계 최정상 팀들을 차례로 격파했다. 득실점 마진은 ‘+31’로 전체 1위였다. 승부사 김은정의 과감한 작전지시와 공격이 주효했다. 각 엔드에서 마지막 투구를 담당하는 김은정은 예선 라운드에서 경기당 샷 성공률이 평균 78%에 달했다. 출전국 스킵(주장) 중에서 안나 하셀보리(스웨덴·82%)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김 감독은 “우리 팀을 두고 ‘어떻게 한국에서 갑자기 이런 팀이 나왔나’라고 묻는 사람이 많지만 우리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오랫동안 만들어진 팀”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여자 컬링팀은 컬링 스톤처럼 단단한 팀워크로 뭉쳐 있다. 스킵 김은정과 리드 김영미는 의성여중·고 동기동창이다. 세컨드 김선영과 서드 김경애도 마찬가지다. 김영미와 김경애는 자매다. 여기에 후보로 나서지만 든든한 막내 김초희가 모여 ‘팀킴’을 이뤘다. 스킵 김은정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팀을 이끄는 리더라면, 리드 김영미는 소통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다.

그동안 컬링 대표팀은 ‘무관심’과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컬링은 태릉선수촌 입소가 불가능한 ‘촌외 종목’으로 분류됐었다. 국가대표인데도 선수들은 선수촌 밖에서 자체적으로 숙식을 해결하며 훈련해야 했다. 2015년에서야 태릉선수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여름 대한컬링연맹이 집행부 내분으로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되면서 풍족한 지원을 받지도 못했다. 그나마 2006년 건립된 경북컬링훈련원이 버팀목 역할을 해줬다.

1994년 대한컬링경기연맹이 창설되면서 국내에 보급된 컬링은 여자 대표팀의 첫 올림픽 출전을 계기로 ‘볕’을 봤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데뷔한 여자 대표팀은 첫 경기에서 일본을 12대 7로 눌렀다. 최종 성적은 8위였지만 긴장감 넘치는 경기내용, 당구나 구슬치기를 연상케 하는 샷 장면은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리고 24년 만에 한국 컬링은 가장 뜨거운 동계스포츠로 떠올랐다.

강릉=박구인 기자, 이현우 기자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