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컬링 열풍으로 들썩이고 있다. 정작 컬링이라는 스포츠를 체험해 본 한국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국민이 컬링 규칙을 달달 외우고 경기 관전을 즐기는 이례적인 일이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벌어졌다.
컬링 신드롬의 중심에는 한국 컬링 여자 대표팀이 서 있다. 멤버 대부분이 경북 의성 출신으로 지역 내 컬링훈련원에서 훈련을 했다는 이유로 의성의 특산물인 마늘에 빗대 ‘갈릭걸스(마늘소녀)’라고 불린다. 이들은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가며 국민들을 감동시켰다.
여자 컬링 세계랭킹 8위에 불과한 한국은 평창올림픽 예선에서 세계랭킹 1∼5위 캐나다·스위스·러시아·영국·스웨덴을 잇따라 격파하며 8승 1패를 기록했다. 예선 1위 4강 진출은 아무도 예상 못한 깜짝 성적이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 첫 출전해 6승 3패로 10팀 중 8위에 그친 뒤 4년 만에 이룬 쾌거다.
한국 컬링 여자 대표팀 소속 선수 개개인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특히 스킵(주장) 김은정(28)은 아이돌급 유명세를 타고 있다. 그는 운동선수로서는 보기 드물게 안경을 쓰고 ‘엄격·근엄·진지(엄근진)’한 표정으로 스톤을 투구한다. 이후 팀 동료 김영미(27)에게 빗질(스위핑)을 지시하며 ‘영미’라고 애타게 외치는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 이들이 모두 김씨라는 점,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반납했다는 점 등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온라인상에는 컬링 장비와 유사한 도구를 사용해 컬링 경기를 재현하는 영상이 유행처럼 올라오고 있다. 컬링의 브룸 대신 무선청소기나 빗자루를 들고, 스톤을 대신해서는 로봇청소기를 사용하는 식이다. 이들 역시 김은정을 따라하며 ‘영미’를 외친다.
컬링의 인기는 올림픽 이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 컬링 대표팀이 청소기 광고 모델로 잘 어울리겠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삼성·LG전자 등 대형 가전업체들은 대표팀의 모델 섭외를 추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가전제품 광고 트렌드가 유명인을 내세우기보다 제품의 성능을 부각하고 있는 영향이다. 게다가 LG전자는 이미 아이스하키 대표팀을 ‘코드제로 A9’ 청소기 모델로 쓰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조업체보다 유통업체가 컬링 대표팀을 모델로 기용할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신세계백화점은 소치올림픽 직후 컬링 여자 대표팀을 점포 2곳에 초대해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유성열 권기석 기자 nukuva@kmib.co.kr
[‘평화의 평창’ 결산 <1>] 청소기·빗자루 들고 “영미”… 전국민 컬링 신드롬
입력 2018-02-23 18:34 수정 2018-02-23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