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자기토바 ‘피겨 여왕’ 등극

입력 2018-02-23 19:17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알리나 자기토바가 2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회전 연기를 펼치고 있다. 자기토바는 최종 합계 239.57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강릉=윤성호 기자

밍쿠스 발레곡 ‘돈키호테’에 맞춰 프리 종목에서 황홀한 연기 뽐내
점프, 가산점 받으려 후반부 배치… 역대 두 번째 최연소 금메달 따내
메드베데바, 쇼트 열세 극복 못해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빙판 위로 레온 밍쿠스의 발레곡 ‘돈키호테’가 울려 퍼졌다. 발레복을 연상시키는 붉은색 의상을 입은 알리나 자기토바는 24명 중 22번째로 빙판에 나서 웅장한 선율에 몸을 맡겼다. 관중은 숨이 멎도록 깔끔하고 황홀한 연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차세대 여왕’의 품격은 달랐다. 마치 “나의 적수는 나밖에 없다”고 온몸으로 시위하는 듯했다. 자기토바는 화려한 테크닉으로 여자 싱글 세계랭킹 1위이자 절친한 선배인 메드베데바(18)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세계 여자 피겨스케이팅계에 ‘자기토바 시대’가 활짝 열렸다.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AR) 자기토바는 23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81.62점에 예술점수(PCS) 75.03점을 합쳐 156.65점을 받았다. 쇼트프로그램에서 가장 높은 82.92를 얻었던 자기토바는 총점 239.57점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자기토바는 가산점을 받기 위해 점프를 후반부에 집중 배치했는데, 이 전략이 맞아떨어졌다.

나이가 만 15세 9개월4일인 자기토바는 여자 싱글 역대 두 번째로 어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타라 리핀스키(36·미국)가 자기토바보다 24일 적은 나이에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5세 때 피겨를 시작한 자기토바는 시니어 데뷔 시즌인 2017-2018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과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유럽 피겨스케이팅 선수권을 제패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메드베데바가 지난해 11월 오른쪽 발등 미세골절 진단을 받고 주춤하는 사이 급성장해 평창올림픽까지 석권하며 새로운 여왕으로 등극했다. 이번에 올림픽에 데뷔한 자기토바는 도핑 파문으로 국가명 대신 OAR 신분으로 출전한 러시아에 평창올림픽 첫 금메달을 안겨 기쁨이 더했다.

자기토바는 우승 후 “금메달을 따냈다는 게 아직 믿기지 않는다”며 “프리스케이팅 점수를 봤을 때 정말 놀랐다. 긴장감을 떨치고 링크에 나서 흔들리지 않고 연기를 펼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관중에게 나의 연기를 보여 주고, 나의 감정을 전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메드베데바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역시 무결점 연기로 자기토바와 같은 156.65점(TES 79.18점+예술점수 77.47점)을 받았지만 쇼트프로그램에서의 열세(81.61점)를 극복하지 못하고 총점 238.26점으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러시아의 예테리 투트베리제(44) 코치에게 함께 지도를 받는 자기토바와 메드베데바는 오랜 친구이자 선후배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사이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했다.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자기토바는 메드베데바의 총점이 나오자 눈물을 글썽였다.

강릉=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