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원한다면 알파인스키 선수가 될 수도 있어요. 지금 자메이카인이 올림픽에 나와 있다고요.”
자메이카 대표로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봅슬레이 2인승에 출전한 재즈민 펜레이터 빅토리안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하다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그는 “내게 중요한 것은 자메이카의 어린 소년 소녀들이 그들과 똑같은 곱슬머리와 갈색 피부를 보게 만드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빅토리안이 힘겹게 말을 맺자 기자회견장은 일순 조용해졌다. 잠시 뒤 이례적으로 기자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동계올림픽은 그간 ‘유럽과 북미 지역의 부유한 백인을 위한 행사’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눈이 많은 지역 출신에게 유리하다는 환경적 특성, 장비부터 시설관리까지 돈이 많이 드는 경제적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에서부터 이런 시각은 점점 옛말이 되고 있다. 올림픽 참가국과 인종이 더욱 다양해졌고, 성적 또한 훌륭하다.
가장 큰 변화는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감지됐다. 여자 봅슬레이 2인승 상위 5개팀 가운데 4개팀에 아프리카계 선수들이 포함돼 있었다. 지난 21일 은메달을 따낸 미국팀의 엘레나 마이어스 테일러, 로렌 깁스는 아프리카계다. 테일러는 레이스 이후 “아프리카 한가운데 있는 아이에게도 훌륭한 봅슬레이 선수로 살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이지리아 여자 봅슬레이팀 선수들은 결승선에서 헬멧을 벗고는 ‘아임 에브리 우먼(I’m every woman)’이라는 곡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아쿠오마 오메오가는 “올림픽에 자메이카도 있고 나이지리아도 있다. 우리 모습을 TV로든 책으로든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20개국 중 최하위였지만 관중도 환호했다. 불과 2년 전 철물점에 가서 연습용 봅슬레이를 만들던 나이지리아 선수들이었다.
평창올림픽의 스펙트럼을 넓힌 것이 아프리카계만은 아니다. 유럽의 전유물이라던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아시아의 성장이 확연하다. 단거리의 경우 남녀 500m 은메달이 한국에, 여자 500m 금메달이 일본에 돌아갔다. 남자 팀추월에서 한국이 은메달을, 여자 팀추월에서 일본이 금메달을 따냈다. 김민석이 남자 1500m에서 아시아 첫 동메달을 따낸 일은 충격으로 평가됐다.
강력해진 아시아는 ‘전통의 강호’ 내부로 스며들었다. 미국 선수단의 최고 스타인 여자 스노보더 클로이 김은 한국계 미국인이다. 23일 여자 피겨스케이팅에서 감동적 연기를 펼친 미라이 나가수는 일본계 미국인이다. 중국계 미국인인 남자 피겨 스타 네이선 첸은 중국 전통복장을 연상시키는 의상으로 4회전 점프를 선보였다.
물론 세계인의 축제임을 내세우기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가장 다양하다는 미국 선수단을 보더라도 244명 중 아프리카계는 10명, 아시아계는 11명에 머문다. 해외 언론은 “올림픽의 정신은 다양성과 포용”이라며 “앞으로 하계·동계올림픽이 일본과 중국에서 잇따라 열리는 만큼 아시아의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동계올림픽은 유럽·북미 백인을 위한 행사라고? “나이지리아, 자메이카인도 있습니다”
입력 2018-02-24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