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의 9개 중 4개 유죄 인정
“최순실·안종범 비위 알고 감찰 착수 안했다” 지적
禹, 선고 내내 무표정 응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달 29일 최후진술에서 자신을 향한 검찰의 국정농단 수사가 표적수사라고 주장했다. 검사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한 자신을 향한 정치적 보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법원은 “민정수석으로서 직무를 저버려 국가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그의 책임을 추궁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는 22일 우 전 수석의 혐의 9개 중 4개를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남색 양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한 우 전 수석은 선고를 듣는 20여분동안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재판부가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와 변명으로 일관하는 등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질타할 때도 입을 굳게 다문 채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재판부는 우 전 수석이 늦어도 2016년 7월쯤에는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국정농단 비위행위를 충분히 파악했다고 봤다. 당시 민정수석실이 미르·K스포츠 재단 임직원들 세평을 수집한 사실, 청와대 비서실장 주재 회의 내용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그런데도 진상을 파악하거나 감찰에 착수하지 않았다”며 “청와대 개입 여부는 언급하지 않은 채 최씨 개인문제로 추정된다는 취지의 법적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직무방임 행위로 국가적 혼란 상태가 더욱 악화됐다”고 덧붙였다.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감찰을 방해한 혐의도 꾸짖었다.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을 통해 특별감찰관실 파견 경찰관을 내사하게 하고, 특감실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감찰 가능성을 거론했던 사실 등이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민정수석으로서 지위와 위세를 이용해 노골적으로 감찰을 방해했다”며 “피고인 범행으로 인해 특감실은 제대로 된 감찰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좌편향됐다는 이유로 CJ E&M을 검찰에 고발하라고 공정거래위원회를 압박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CJ E&M에 대한 청와대의 부정적인 인식을 피고인이 알고 있었다고 볼 증거는 부족하다”면서도 “특정 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부당한 의도로 직권을 남용한 전례 없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세월호 수사 외압과 관련해 위증한 혐의는 국회 고발 절차가 적법하지 않아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수사팀장이었던 윤대진 1차장 검사의 진술 등을 언급하며 “증언 내용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고와는 별도로 우 전 수석은 추가로 1심 재판을 받아야 한다. 검찰은 국가정보원 조직을 동원해 공무원·민간인 불법사찰을 하도록 하고,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의 운용 상황을 보고받은 혐의로 우 전 수석을 지난해 12월 구속 기소했다. 국정농단 핵심 연루자 중 마지막 구속이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그래픽=안지나 기자
재판부 “우병우, 직무 저버려 국가 기능 저해”
입력 2018-02-23 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