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아내 루스 벨은 무엇보다 상대의 신앙적 열정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 그레이엄은 미국 일리노이주의 휘튼대에서 만난 루스에게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중국 선교사의 자녀로 티베트 선교를 꿈꾸던 루스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러던 루스는 한 소그룹에서 그레이엄이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본 뒤 마음을 바꾼다. 청혼을 받아들였고 평생 전 세계를 돌며 복음을 전한 남편의 목회 파트너로 동행했다.
1943년 결혼한 부부는 슬하에 2남3녀를 뒀다. 그레이엄 여사는 남편을 묵묵히 내조했지만 종종 따끔한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남편이 정치 입문을 고민할 땐 이렇게 경고했다. “미국인은 이혼한 대통령에겐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를 위해 사역을 그만둔다면, 반드시 이혼당할 줄 알라.”
영혼의 동반자 그레이엄 여사는 2007년 남편과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87세 나이로 소천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루스는 내 인생의 반려자였고 하나님은 우리를 팀으로 불렀다”며 “그의 격려와 지원이 없었다면 내 평생의 업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얼굴을 거의 못 보고 자랐다. 아버지는 항상 전 세계를 돌며 설교했고 자녀들은 어머니와 외가 가족과 주로 지냈다. 아들 프랭클린이 5살 때 어머니와 같이 침실에 있는 그레이엄 목사를 보고 “이 남자는 누구냐”고 물을 정도였다.
그레이엄 목사는 가족과 함께 있을 때도 그를 찾아온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장녀 지지는 미국 언론 인터뷰에서 “전도자와 아버지의 인격을 나누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평범한 아버지를 꿈꾸며 욕조에서 운 적도 있다”고 회고했다. 아들들은 십대 때 음주와 마리화나 흡연 사실을 공개하는 등 반항적 행동을 보였다. 성인이 된 뒤에도 방황은 계속돼 5자녀 중 3자녀가 이혼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레이엄 목사는 해외 출장 중에도 꾸준히 편지를 쓰고 기도하며 자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 결과 5남매는 모두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부흥사(앤), 작가(지지), 치유사역단체 대표(루스), 비영리단체 사마리아인의 지갑 대표(프랭클린), 목회자(네드)로 성장했다. 프랭클린은 “부모님은 성경말씀으로 자녀를 교육했으며 신앙 모범을 보였고 매일 우리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빌리 그레이엄 목사 가족들 면면… 아들 딸도 대 이어 복음 사역 활발
입력 2018-02-23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