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도자’로 불리는 고(故)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고향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은 시내 곳곳에 그레이엄 목사의 흔적이 뚜렷했다. 샬럿 공항에서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1950년에 설립된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 본부가 있고, 그 옆에는 2007년 6월 문을 연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 앞을 지나는 도로 이름은 ‘빌리 그레이엄 파크웨이’로 명명돼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가장 많은 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 샬럿 옵서버는 21일(현지시간) 그레이엄 목사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메인 기사 제목을 ‘이제 그가 집으로 돌아온다(Now he’s coming home)’로 달았다. 그레이엄 목사는 샬럿에서 태어났지만 은퇴 이후 노년을 이곳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의 산골 마을 몬트리트에서 지냈다. 그러나 그의 시신은 장례절차를 밟아 샬럿 시내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 부지에 안장된다. 그의 묘지라도 가까이 두고 싶어하는 샬럿 시민들의 목사에 대한 존경심을 엿볼 수 있는 기사였다.
반면 그레이엄 목사가 마지막 숨을 거둔 몬트리트 자택과 주변 마을은 차분했다. 마을 입구에 ABC 등 방송사의 중계차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진을 치고 있었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레이엄 목사의 집은 인구 700명 남짓한 몬트리트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었다. 문패도 주소도 없는 그의 집은 산꼭대기로 가파르게 올라가는 좁은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었다. 수십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면서 2억명 이상에게 설교를 하고 수백만명에게 기독교 신앙을 불어넣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이 그에게 자문을 구하면서 ‘최고의 목회자’로 추앙받았지만 그의 마지막 거처는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두 손으로 밀면 아무 저항 없이 열릴 것 같은 키 작은 나무 대문이 집 앞을 가만히 막고 있어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매일 성경읽기와 기도로 하루를 보낸 그레이엄 목사의 경건한 생활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대변인 마크 드모스의 설명에 따르면 그레이엄 목사는 21일 오전 7시33분 아무런 고통 없이 평안한 모습으로 침대에서 잠든 채 소천했다.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가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는 “그레이엄 목사가 20년 가까이 파킨슨병에 시달렸으며, 최근에는 시력과 청력이 감퇴되고 폐렴이 겹치면서 힘든 말년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비록 백수(白壽·99세)를 누렸지만 다른 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노쇠현상을 겪으면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이다. 1994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고,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만든다”고 했던 그 자신의 말처럼.
샬럿 옵서버에 따르면 그레이엄 목사가 자신의 전도여행에서 가장 많은 인파를 기록한 것은 1973년 6월 110만명이 모인 서울 여의도 집회였다. 미국 집회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건 91년 9월 뉴욕 센트럴파크 집회로 25만명이었다.
샬럿·몬트리트(노스캐롤라이나)=
글·사진 전석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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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 타계] 현지 신문 “Now he’s coming home”
입력 2018-02-22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