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상주본’ 패소 배익기씨 “항소”… 여전히 소유 주장

입력 2018-02-23 05:04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로 알려진 배익기씨가 지난해 4월 공개한 사진.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하 상주본)을 소유한 배익기(55)씨가 문화재청의 강제집행 회수 계획을 막기 위해 낸 청구이의의 소 선고공판에서 재판부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문화재청에 유리한 상황이 됐지만 배씨가 여전히 자신의 소유를 주장하고 있어 상주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지법 상주지원 민사합의부(재판장 신헌기 지원장)는 22일 선고공판에서 “(상주본) 소유권이 원고에게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배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할 뜻을 밝혔다.

앞서 배씨는 문화재청에 상주본 회수조건으로 1000억원을 요구했고 문화재청은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배씨의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며 강제집행 의사를 밝혔다. 이에 배씨가 강제잡행을 막기 위해 소를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3차례 조정을 시도했지만 모두 결렬됐고 사회단체 등이 상주본을 구매해 국가에 기증하는 방식 등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선고일 전까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상주본을 둘러싼 갈등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7월 배씨가 방송에 상주본 일부를 공개했다. 상주본 발견 전까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간송 전형필 선생이 발견한 간송본뿐이었다. 상주본은 간송본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간송본에는 없는 훈민정음 연구자의 주석이 달려 있어 더욱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상주본은 소송에 휘말리면서 모습을 감췄다. 상주본이 공개된 직후 상주의 골동품상 조모(2012년 사망)씨가 2010년 2월 배씨를 상대로 물품인도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배씨가 자신의 가게에 있던 상주본을 훔쳐갔다고 주장한 것이다. 2011년 6월 대법원이 상주본을 조씨 소유라고 판결하자 조씨는 같은 해 7월 검찰에 배씨를 형사 고소했다. 배씨는 그해 9월 절도 혐의로 구속돼 2012년 2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배씨에게 실형이 선고되자 조씨는 상주본이 없는 상태에서 소유권을 국가에 기증했는데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배씨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상황이 복잡하게 꼬이게 됐다.

2015년 3월 배씨의 집에 불이 나면서 상주본은 훼손 여부까지 논란이 됐다. 배씨는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면서 불에 그을린 상주본 일부의 사진을 공개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배씨를 설득할 생각이지만 계속 인도를 거부하면 강제집행도 검토할 것”이라며 “하지만 강제집행 시 상주본 훼손 등의 우려가 있어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상주=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