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30·사진)은 21일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팀추월에서 은메달을 따낸 직후 아쉬워하며 “한 경기가 남았으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24일 밤 매스스타트에 출전해 금메달을 노린다.
매스스타트는 다른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들과 달리 많은 선수들이 한꺼번에 빙판 위에서 순위 싸움을 펼친다. 이 때문에 ‘스피드스케이팅의 쇼트트랙’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승훈을 위한 ‘맞춤 종목’이라고도 불린다.
가파른 코너
매스스타트는 롱트랙의 인코스나 아웃코스에서 겨루는 경기가 아니다. 선수들은 그보다 안쪽인 ‘웜업 트랙’에서 시합을 한다. 따라서 매스스타트의 곡선주로는 다른 스피드스케이팅 경기보다 급격히 꺾이는 형태다. 쇼트트랙 선수 출신으로서 코너링에 장점이 있는 이승훈에게 유리한 환경이다.
게다가 평창올림픽 매스스타트의 코너는 평소보다 더욱 가팔라졌다. 강릉 오벌 웜업 트랙의 폭이 5m로 넓게 설계됐기 때문이다. 대부분 경기장에서는 웜업 트랙 폭이 4m이며, 곡선주로는 반지름 22m의 타원 형태를 띤다. 하지만 강릉 오벌은 웜업 트랙이 경기장 안쪽으로 1m 더 파고들면서 곡선주로가 반지름 21m의 타원이 됐다. 미세한 차이도 톱클래스 선수들 틈에서는 큰 영향이다.
자리싸움
이승훈의 매스스타트 강점으로 이어진 쇼트트랙 기술들은 코너링 이외에도 많다. 그의 무수한 매스스타트 우승을 이뤄낸 요인 중에는 자리싸움과 경기운영 능력이 있다. 힘을 비축할 때인지 치고 나갈 때인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해야 하는 쇼트트랙에서 다듬어진 능력들이다.
이승훈은 경기 초반 선수들 틈에서 힘을 아끼다가 막판 1∼2바퀴에서 선두 그룹을 대거 추월하는 전략을 애용해 왔다. 이는 장거리 쇼트트랙인 1500m에서 우리 선수들이 자주 보여온 모습이기도 하다. 김관규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위원장은 22일 “이승훈은 쇼트트랙을 했던 선수이기 때문에 그룹 레이스 전략이 한 수 위였다”며 “이승훈의 매스스타트를 평창올림픽에서 가장 유력한 메달 종목으로 꼽고 싶다”고 했다.
지구력과 스퍼트
매스스타트는 16바퀴 가운데 4, 8, 12, 16번째 바퀴에서 배점을 부여한다. 4, 8, 12번째 바퀴에서는 1∼3위에게 각각 5점, 3점, 1점을 매기지만, 마지막 바퀴에서는 60점, 40점, 20점으로 점수를 대폭 높인다. 결국 지구력을 바탕으로 막판 스퍼트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종목이다.
이승훈은 달릴수록 점점 빨라지는 장거리 선수로 유명하다. 지난 18일과 21일 남자 팀추월 경기에서도 상대가 지치는 후반에 피치를 올리는 전략으로 짜릿한 역전극을 보여줬다. 김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이승훈의 1500m 기록이 점점 좋아졌는데, 순간 스퍼트를 할 파워도 좋아졌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귀띔했다.
공공의 적 이승훈
최강자는 견제를 이겨내야 한다. 제갈성렬 의정부시청 빙상단 감독은 “항상 마지막 바퀴에서 역전을 당한 유럽 선수들은 이승훈에게 잔뜩 약이 오른 상태”라고 했다. 24일 경기에서는 유럽 선수들이 합동으로 이승훈을 견제할 가능성마저 있다.
초반에 크게 치고 나가며 도망가는 선수가 발생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여유를 부리다간 막판 추월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강석 의정부시청 빙상단 코치는 “돌발상황에 대한 세부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이승훈, 매스스타트 ‘맞춤형 최강자’… 4가지 요소
입력 2018-02-23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