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은의 씨네-레마] 누가 진짜 괴물인가

입력 2018-02-24 00:03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The shape of water, 2017)
임세은 영화평론가
어릴 적 읽었던 동화 속 괴물은 우리에게 무엇으로 남았을까. 아이들은 동화를 보며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동경하며 꿈을 키운다. 동화 속 상상의 세계는 아이들에게 공포의 서사가 되기도, 신비한 기적의 서사가 되기도 한다.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는 때론 악몽 같은 공포영화로, 때론 동화 같은 판타지영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감독이다. 유령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를 환상적 이야기 안에 불러들이고, 흉측한 외모의 괴물이나 곤충처럼 공포를 주는 대상에게 따스한 인간미를 불어넣어 독특한 세계관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악마의 등뼈’(2001)와 ‘판의 미로’(2006)는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이 꿈꾸는 동화 같은 이야기에 스페인 내전의 상처를 담아내 놀라운 비평적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포스터) 역시 어른 동화와 같은 영화다.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시작으로 많은 상을 수상했고, 2018 아카데미시상식에 13개 부문 최다 후보작으로 올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목소리를 잃은 여성과 괴물의 사랑’이라는 남다른 이야기로 수많은 비평가와 관객의 호평을 얻고 있다.

1960년대 냉전시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이상과 어두운 그림자가 혼재된 풍경 위에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 항공우주국(NASA) 비밀실험실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언어장애인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어느 날 수조에 갇혀 도착한 괴생명체를 보고 신비한 호감을 갖게 된다.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는 이 생명체를 실험해 소련과 경쟁할 우주개발에 이용하려 한다.

델 토로 감독이 1960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만든 이유는 그 시절이 미국의 국가적 이상과 방향이 확고해지던 때이자 동시에 인종과 젠더 등으로 인한 갈등과 분열이 깊어지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불관용과 다름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지금 시대의 풍조와 닮아있기도 하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감독의 태도는 주요 인물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엘라이자의 친구는 동료 청소부인 흑인여성 젤다와 일자리를 잃은 옆집 노인 자일스이다. 해상괴물 역시 사회에서 배제된 이질적인 타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존재다. 불완전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사랑과 연대를 통해 감독은 이들 간의 사랑이 어떤 모양인지를 그려낸다. 여기서 사랑은 물의 형상을 통해 표현된다. 영화 중반 엘라이자가 출퇴근하는 버스 유리창 위로 여러 물방울이 한데 모인다. 하나하나의 물방울이 모여 다시 하나가 되어 더 큰 모양을 만들고, 온 세상을 덮는 비처럼 내리고 바다를 이룬다.

물은 모든 생명의 시발점, 잉태지, 서식처이다. 스스로 모양을 만들지 않고 담아내는 용기에 따라 자신의 형체를 바꾸지만 모든 생명에 힘을 제공하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감독은 물을 통해 사랑도 그러함을 보여준다.

생명의 힘 또한 사랑에서 나온다. 해양괴물의 무서운 힘은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사람을 해할 수도 있지만 그의 능력이 사랑 가운데 있을 때는 신비한 힘을 발휘하고 치유의 기적을 행한다. 우정의 마음을 담은 손길로 자일스의 상처가 회복되고 머리카락이 새로 자란다.

그렇다면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냉전시대의 부정적 이면을 대변하는 스트릭랜드의 모습에서 진짜 괴물을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신과 가장 닮은 우월한 존재로 여긴다. 또 다른 백인 남성인 파이가게 점원은 자일스를 흑인과 함께 가게에서 쫓아낸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부정하며 혐오를 당연하게 여기고 폭력을 정당화하는 이들이다.

창세기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라며 인간의 창조를 설명한다. 그 형상은 외모가 아닌 마음과 중심의 형상이다(요 7:24). 사랑이신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라면 사랑의 모양이 있어야 한다. 그럴듯한 지위와 외모 속에 숨겨진 진짜 괴물들이 폭로되고 있는 최근 한국사회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무엇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가에 대해 반성하게 한다.

임세은 <영화평론가>